지금은 사교육 1번지, 한때 부동산 시장의 풍향계로 불리던 은마아파트는 이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한 70년대에는 허허벌판에 세워진 평범한 아파트에 불과했다. 은마아파트 입구 지하상가에는 당시 개척기 강남인들의 자취가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다. 이 지하상가는 강북 혹은 소도시의 어디쯤에나 있을 법한 소박하나 박력 넘치는 재래시장을 방불케 한다.
주택가 시장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반찬, 생선, 야채가게에 세탁소, 수선집, 미장원은 필수. 부침개를 찾는 아주머니, 떡볶이를 하는 분식집에 몰려든 여학생들, 순대국에 막걸리를 마시는 중년들의 모습은 강남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품목들의 가격이 다소 높은 대신 질이 뛰어나 강남의 소비 패턴을 보여준다.
30년 이상 된 상가이다 보니 나름대로 역사와 개성을 가진 가게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떡집이 유명하다. 낙원상가 근방이 강북의 떡을 대표하는 곳이라면 강남에서는 이곳이 중심지 중 하나로 꼽힌다. 은마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강남권의 많은 사람들이 이 시장을 이용하는데 이 중에는 혼수용 떡을 찾거나 이 곳의 떡을 냉동해 미국 친지들에게 보내려는 고객들이 꽤 많다고 한다.
지하상가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흑백영화 속의 부분 컬러 처리처럼 극채색의 화려한 옷차림의 세련된 여성들이 불쑥 등장한다. 하이힐과 선글라스의 최첨단 패션에 고등어 토막이 들어 있을 법한 검은 비닐봉지를 든 모습은 지하공간에 생소한 긴장감을 준다. 은마아파트뿐 아니라 인근 강남권에서 일부러 백화점이 아닌 재래시장의 건강한 분위기를 즐기러 오는 고객들이 아닐까. 이곳은 원주민과 토착민이 없는 무주공산에 외인부대들이 인기척을 내며 모여든 새로운 정착지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주는 어색한 긴장감이 이 지하상가에서는 즐겁게 교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