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

"의원님, 조국 교수가 방배3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무래도 총선에서 지역으로 출마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서울 서초을·초선)은 12월 초 지역구 당원으로부터 이와 같은 동향 보고를 받았다.

이 당원은 "거리에서 조 교수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도 전했다. 내년 총선에서 집권 한나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진보진영의 유력 인사가 이사왔다는 정보가 올라오자 고 의원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안 그래도 총선 출마설이 끊이질 않던 조국(46)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아닌가.

부산 출신인 조 교수는 이른바 '강남좌파'의 아이콘에 해당하는 인물로 지난 2010년 말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내고 최근까지 진보진영의 집권 비전과 전략을 모색하는 정치 토크쇼에 단골손님으로 참여해 왔다.

조 교수가 서초을 지역구로 이사를 왔다는 말은 실제 강남좌파의 서울 강남 공략이 구체화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당시 조 교수 이사설에 서초·강남·송파 등 한나라당 서울 강남벨트 의원들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고승덕 의원 사무실 한때 비상

취재 결과 조 교수의 서울 서초을 이사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지난 12월 22일 기자는 조국 교수가 진짜 서초구에 출마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취재에 나섰다. 조 교수의 거주지인 서울시 서초구 방배3동 S아파트를 찾아 확인한 결과, 조 교수는 지난 2006년 8월부터 주민등록상 이 아파트에 거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총선 출마를 위해 이사를 온 게 아니라 본래 서초을 지역구에 살아온 주민이라는 것이다. 이 아파트 관리인은 "조 교수님이 이곳으로 실제 이사를 온 지는 약 3년 정도 된 것 같다. 자녀들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하고, 교수님 이외의 가족은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조 교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 크기는 170㎡로, 2006년 조 교수가 구입할 당시 가격은 7억원 안팎이었으나 현재 시가는 11억원 정도다.

준공한 지 31년째인 이 아파트는 최근 재건축 호재 대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 못지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강준만 전북대 교수 저 '한국생활문화사전')이라는 강남좌파 정의와 어긋나지 않는 주거지다. 조 교수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인근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또 다른 강남좌파로 분류돼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살고 있다.

조 교수는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에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서울 서초구 방배3동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조국 교수가 강남좌파라고 해서 말 그대로 강남구에 사는 줄 알았지 우리 서초구에 산다는 건 몰랐다. 최근 언론에 자주 나오면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이사를 온 걸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고승덕 의원실에서도 "조 교수가 최근 이사를 왔다"는 소문을 접하고 확인 작업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교수의 움직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나라당 서초을 지역구의 한 관계자는 "조국 교수가 이사를 왔다는 소문이 있어서 우리도 알아봤는데, 몇 년 전부터 방배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야권에서 조 교수의 의지와는 다르게 출마설을 흘린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은 불출마 의사를 여러 번 밝혔지만 상황은 늘 변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여전히 조 교수가 경계 대상임을 감추지 않았다.

"내년 3월까지 잠수 타겠다"

조 교수 역시 주변의 관심과 달리 내년 총선 불출마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지난 12월 22일 오후 4시경 기자가 조 교수의 방배동 자택을 찾았을 때 그는 집에 머물고 있었다. 아파트 현관에서 인터폰을 누르자 조 교수가 아닌 다른 남성이 "누구냐"고 물은 뒤 조 교수를 바꿔줬다.

조 교수는 "사전에 약속을 하고 온 것도 아니고, 나는 언론과 일절 만나지 않고 있다"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아파트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이날은 한낮 기온이 영하 4도로,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3년 전부터 방배동 아파트서 살아 야권서 출마설 솔솔
 주간조선 확인 요청에 "절대 총선 출마 없다"


기자는 인터폰을 통해 "조 교수님의 휴대폰이 줄곧 꺼져 있어 이렇게 찾아왔다. 출마설에 대한 얘기가 지역에서 나오고 있다"고 하자, 자택 전화번호를 알려주면서 다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이후 조 교수는 전화 통화에서 ‘내년 총선 출마 여부’에 대해 “제가 트위터상으로 이미 얘기를 했다. 출마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밝혔다. 내년 3월까지 이른바 ‘잠수’(외부활동 중단)를 탈 생각이고 언론과 접촉은 일절 삼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 불출마'를 공개 석상에서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조 교수의 총선 출마설이 끊이질 않는 이유는 내년 선거에서 야권이 한나라당의 아성(牙城)인 강남을 공략하기 위해 대중성이 높은 인물을 영입할 개연성이 높고, 한나라당의 강남벨트를 허물 수 있는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조 교수가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에게 "서초구 국회의원들이 조 교수의 출마설에 긴장하고 있다"고 하자 "불출마 얘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자꾸 질문을 하는 자체가 불쾌하다. 분명하게 밝히지만 제가 무슨 조건을 달거나 해서 불출마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절대 출마하는 일은 없을 거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고승덕)에게도 내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기자를 만나게 되면 내 생각과 다르게,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가 나올 게 뻔하다. 그래서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이니만큼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면서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野 "강남 아성 허물 절호의 기회"

본인이 이번에도 강하게 부인했지만 '조국 강남 출마설'은 총선을 4개월 남긴 현 시점에서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볼 수는 없다. 최근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인식됐던 이른바 강남 3구에서조차 여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강남벨트가 야권의 공략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야권은 내년 총선이야말로 강남의 한나라당 아성을 허물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야권의 이런 분위기는 지난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특히 강남 지역구 중 다른 곳에 비해 호남 출신이 많고 중산층 인구도 많은 서초을은 야권 전략가들로부터 "공략이 가장 쉽다"는 말을 들어왔다.

조국 교수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강남좌파가 이 지역에서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된다. 고승덕 의원도 "조 교수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강남 3구 공략을 위해 야당에서 유력한 인물을 내세울 것이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안하면 '그래도 강남인데, 설마 야당 후보에게 지겠느냐'는 식으로 안이하게 생각할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