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주둔 9년 만에 철수한 이라크에서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의 뿌리깊은 종파 분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시아파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이라크 정부는 수니파 지도자인 타레크 알 하시미 부통령에 대해 반(反)테러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0일 보도했다. 말리키 총리 정부는 이날 하시미 부통령의 경호원 3명이 시아파 고위관리 암살과 주요 기관 폭탄테러 등을 계획했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국영TV '알 이라키야'는 이들 경호원이 하시미 부통령으로부터 암살 한 건당 3000달러를 받기로 했다는 등의 테러 계획을 자백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말리키 총리는 내각의 수니파 리더인 살레 알 무트라크 부총리에 대해서도 의회에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수니파도 즉각 반격에 나섰다. 수니파 정당연합 '이라키야'를 이끄는 무트라크 부총리는 "이라크에 재앙이 닥치는 것을 막기 위해 말리키 독재 내각을 거부한다"며 정면 투쟁을 선언했다. 그는 하시미 부통령의 혐의에 대해 "정치적으로 조작된 것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시미 부통령은 영장 발부 하루 전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역으로 피신했다.
미군이라는 힘의 균형자가 사라진 상황에서 종파 간 갈등이 자칫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수니파 왕정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이 없는 이라크에서 각각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어 지역 패권 쟁탈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라크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시아파와 35%인 수니파는 양보 없는 분쟁을 거듭해왔다. 미군 점령기인 2006~2007년에도 두 세력 간 보복테러로 수천 명이 사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두 세력은 미군 주둔 기간 내각을 분점하며 불안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지만 해묵은 반목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수 시아파는 수니파 정권인 사담 후세인 시절 박해받았다는 피해의식이 큰 반면 소수 수니파는 미군 점령 이후 시아파 세력이 확대되자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상황에 우려를 나타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우려를 갖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양측에 법규와 민주적 정치과정에 부합하는 대화를 통해 의견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