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앙겔라 메르켈(Merkel·57·사진 왼쪽) 독일 총리는 독일의 재정 위기 대응 방안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면서 "그리스에 추가 대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볼프강 쇼이블레(Schaquble·69·오른쪽) 재무장관이 메르켈의 말을 자르고 나섰다. 쇼이블레는 "사실 이 방안은 내 아이디어"라며 "이미 그리스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서열상 엄연히 아래인 장관이 총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끼어들었지만 메르켈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말이 맞다"며 조용히 수긍하고 넘어갔다.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은 요즘 경제 대국 독일을 이끄는 메르켈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그런 메르켈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으로 쇼이블레가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관계가 유럽의 미래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쇼이블레는 정책 입안 과정에서 메르켈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메르켈과 쇼이블레의 특별한 관계는 과거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변호사 출신의 쇼이블레는 1984년 헬무트 콜(Kohl) 총리에 의해 특임장관 겸 총리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1989년에는 내무부 장관으로 동독과의 통일 작업을 지휘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998년 기독민주당 대표가 된 그는 메르켈을 자신의 참모로 기용했다. 잘나가던 쇼이블레는 2000년 기민당이 무기거래상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메르켈이 그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쇼이블레는 고집불통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그는 내무장관이던 1990년 한 정신병자의 총격을 받아 척추를 다쳤다. 이 사건으로 반신불수가 돼 20년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사건 당시 그는 최소한 2년간 입원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몇 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돌아온 그는 휠체어가 집무실 책상 모서리에 걸리자 책상 서랍을 톱으로 잘라내고 하루 17시간씩 일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