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타 시위.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가장 치열한 전투로 꼽혔던 '벌지 전투'의 전장(戰場)에서 미군 병사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던 벨기에의 흑인 간호사가 67년 만에 미국으로부터 감사 표시로 시민상을 받았다. 콩고 출신 벨기에 전직 간호사인 오귀스타 시위(93)는 12일(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의 전쟁 박물관에서 인도적 공헌을 한 공로로 하워드 거트만 미국 대사로부터 이 상을 받았다.

시위는 1944년 12월 나치에 포위당한 바스토뉴에 자원해서 들어가 부상한 미군 병사와 민간인을 간호했다. 당시 히틀러는 벨기에의 오랜 상업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바스토뉴를 공격해 연합군의 진격을 차단하려 했다. 전투는 사상자가 8만여 명 발생할 만큼 치열했다.

시위는 당초 삼촌을 방문하기 위해 이 지역을 찾았다가 나치의 공격 소식을 접했다. 민간인의 피난을 알리는 안내 방송에 그도 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도중에 기차에서 내려 전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때의 결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치에 포위당한 미군 부대에는 의사가 1명밖에 없었고, 의료 장비와 약품도 변변치 않았다. 동료 간호사인 르네 르메르는 나치의 집중포화에 미군 병사 30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시위는 미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간호병으로 활동했다. 시위는 전쟁이 끝난 뒤 벨기에 병사와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고 척추 전문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벌지 전투를 누볐던 흑인 간호사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회자됐고, 미국 인기 전쟁 드라마인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시위가 전쟁 당시 자신의 활동에 대해 60여년간 말하지 않아 주변에서는 '벨기에의 나이팅게일'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거트먼 미국 대사는 "전쟁 중에 그가 근무하던 병원이 폭격을 당해서 우리도 그가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다 영국 역사학자인 마틴 킹이 오래 추적한 끝에 최근 그의 생사를 확인했다. 현재 시위는 벨기에의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 지난 6월엔 벨기에 왕실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상식장에서 "우리는 모두 신의 자식이며, 내가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