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탈출의 계기는 마련됐다. 하지만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경제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재정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난 9~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2011 세계정책회의(World Policy Conference)' 참석자들은 EU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 평가를 하면서도, 위기 재발 가능성을 여전히 경계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세계정책회의는 프랑스 최고의 싱크탱크인 IFRI(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가 주관하는 연례 국제 콘퍼런스로, 국내에선 조선일보가 단독 후원 언론사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콘퍼런스는 지난 9일 끝난 EU 정상회의와 시기가 맞물려 '유럽 재정통합'이라는 따끈한 이슈가 도마 위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유럽 재정위기의 원인과 향방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EU 내 경제 격차가 위기의 원인

지난 9일 끝난 EU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신(新) 안정성장 협약'에 대해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로 인해 증시도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세계정책회의의 참석자들은 비록 영국이 빠졌지만 26개 EU 회원국이 '신안정성장 협약'에 합의한 것은 최악의 위기를 벗어나는 신호탄으로 평가했다.

장 다비드 레비트(Levitte) 프랑스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은 "EU 정상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재정위기 극복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며 "큰 고비는 넘겼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6명의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 위원 중 한 명인 피터 프래트(Praet)도 "재정위기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고, 특히 유로존의 경제전망은 여전히 어둡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유로존 국가들이 새 협약을 잘 준수하면 금융시장이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EU 및 유로화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위기 극복이 이뤄질 것으로 진단했다.

제이콥 프렌켈(Frenkel) JP모건체이스 인터내셔널 회장은 "현재 유로화의 위기는 단순히 화폐로서 유로화의 위기만이 아니다"며 "유로존 내 환율 시스템이나 재정 정책 등 많은 분야의 구조적 문제가 유로화 위기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각 나라가 단일 통화(유로화)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경제력에 맞는 환율을 유지하지 못했고, 환율 조정 실패로 인해 이탈리아는 경쟁력을 잃었고, 독일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지난 9~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2011 세계정책회의’참석자들이 새로운 글로벌 지배구조(거버넌스)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찰스 컵챈(Kupchan)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 투마스 헨드리크 일베스(Ilves) 에스토니아 대통령, 바르톨로뮤 1세(Bartholomew)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푸잉(傅瑩) 중국 외교부 부부장.

레비트 외교안보수석은 "유럽이라는 공동시장을 창출·유지하기 위해 공동 통화로 유로화를 도입했지만, 이후 유로존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수렴(convergence)하지 못하는 바람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로존 내에서 국가 간 경제적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것을 '수렴' 실패의 사례로 꼽았다.

프래트 위원은 재정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유동성(현금) 공급 같은 단기 처방보다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정위기를 해소하고 위기가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유로존의 성장 잠재력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 작업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실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U는 능력 벗어난 과소비부터 줄여야

비(非) EU 회원국들 사이에서는 재정 위기에 대한 유럽 각국 정부의 책임을 따져 묻는 비판도 이어졌다.

푸잉(傅瑩)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은 유럽의 경제회복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무조건적 지원에는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중국에는 하루 1달러로 생활하는 사람이 1억명이나 된다"면서 "이런 경제적 상황을 볼 때, 중국을 포함한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국가들이 유럽을 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압둘라 굴(Gul) 터키 대통령은 "이번 재정위기는 기본적으로 EU 회원국들의 태만함(negligence) 때문에 발생했다"며 "그들에게는 스스로 정한 기준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터키는 현재 EU 가입을 추진 중이지만,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EU 회원국인 에스토니아의 투마스 헨드리크 일베스(Ilves) 대통령은 "EU 내에서 독일, 프랑스, 영국 같은 국가들의 입김이 너무 세다"며 "작은 나라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EU 내에서 이 같은 불평등이 결국 EU가 유럽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