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환 이사장은“장애인들에게 일자리는 꿈★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형원(馨園)'은 지난 9월 파주 신촌리 에덴복지재단 안에 들어선 중증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이다. 친환경세제를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으로 직원 30명 중 장애인이 20명이다. 2009년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으로 선정한 '과연 장애인재활시설이 소규모 운영에서 탈피해 100명 이상, 그중 60%를 장애가 심한 중증장애인들로 고용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국내 첫 모델 사례이다. 이 '중증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을 제안하고 '실험 중'인 사람이 에덴복지재단 정덕환 이사장(65)이다. 회사 이름 '형원'은 그의 호를 딴 이름이다.

정 이사장은 1983년 에덴복지원을 설립해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마련해 왔고, 그 공로로 국민포장(1991), 자랑스러운 한국장애인상(2009) 등을 받았다. 그런 그가 '형원'이야말로 자신의 분신이자, 28년간 장애인 직업재활에 매진한 결정체라고 말한다.

◇"세상을 원망하면 자멸한다"

정 이사장은 1972년, 유도 연습 중 자신보다 20㎏ 무거운 상대를 들다 넘어져 경추 4, 5번 골절을 입었다. 유도 국가대표로 승승장구하던 26살 청년이 목 아래가 마비되는 1급 지체부자유자가 됐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재활 치료에 매달렸다. 유도 선수가 못 되면 코치로라도 일할 수 있게 모교에서 자리를 마련해 줄 거라고 믿었다. 휠체어를 타고 툭툭 떨어지는 팔을 통 넓은 소매 안에 붙들어 넣고 모교를 찾아갔지만, 그들은 냉정했다. "몸은 이래도 주변에서 나를 격려해 주고 받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가 너무 미웠지요."

그에게는 갓 시집와 아들을 낳은 아내와 노모가 있었다. 가족을 굶기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마냥 미워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마음에 분노를 갖고 살면 자기가 못쓰게 돼요. 세상을 미워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그런 일들이 결국 자신을 못 살게 구는 거고, 자멸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청계천에서 공구장사를 하고 서울 구로동에서 무허가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그렇게 해서 모은 1500만원으로 1983년 구로구 독산동 3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5명의 중증장애인들과 함께 전자부품 조립 작업을 시작했다. 에덴복지재단의 시작, 에덴복지원이었다. 일감이 불어 공장이 잘 되면 건물주가 부도를 내 전 직원이 쫓겨났고, 봉제인형을 만들던 공장이 침수되기도 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1987년 개봉동에 공장을 세우고 100명의 장애인 직원들과 쓰레기 수거용 비닐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98년 파주에 옮겨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들에게 '일'은 곧 '삶'

'형원'이 들어 있는 에덴복지재단 1층 사무실에는 정 이사장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정 이사장이 '한국 장애인 직업재활시설협회(사)' 회장을 맡아 장애인 직업재활 및 생산품 판매에 관련한 문제점을 꾸준히 정부와 정치권에 건의하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 오는 사람들이다. 전동휠체어로 하루 종일 바삐 다니고 주중에는 퇴근도 없이 일하지만, 장애인 고용 문제는 여전히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그는 "평생 시설에 살았을지도 모를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으면, 가족과 사회에 결코 애물덩어리가 되지 않고 가정을 꾸리면서 당당한 납세자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껏 그가 운영해 온 근로시설에서 사랑을 싹 틔워 결혼한 근로자들이 50여 쌍이 넘는다. 최저 임금 106만원,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형원'의 중증 장애인들도 일을 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꼽는다.

장애인 근로자들이‘형원’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세제를 들어보이고 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정영호(31)씨는 "이렇게 모으면 1억도 모을 것 같다. 그거 가지고 국제 결혼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했다. 다운증후군 환자인 이민경(33)씨는 "200원짜리 커피값도 아까워서 안 사 먹는다. 돈 모아서 시집 갈 것"이라며 수줍게 웃는다.

그러나 현실은 어렵기만 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4개월이 됐지만, 현재 형원은 판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한 장애인 100명 고용, 그 중 60명 이상을 중증 장애인으로 채용하겠다던 계획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시설과 품질에서 경쟁령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대기업에서 선점한 시장이라 판로개척이 쉽지가 않다.

정 이사장은 "정부에서 장애인 고용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을 2007년 제정해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에서 1% 이상 의무 구매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그것만 잘 지켜진다면 더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1030 착한 소비 운동'을 권하고 다닌다. "장애인에게 '일(1)이 없으면(0), 삶(3)이 없다(0)"는 뜻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장애인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게 우리가 만든 제품을 많이 소비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