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입장] 서민 살림살이 힘들다고하고 고소득층 증세도 추진 중인데…
불어닥칠 역풍 만만치 않아 "내수까지 위축되면 총선 참패"… 일부선 "더 풀어야" 의견도
한나라당은 7일 정부의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투기과열지구 해제 발표에도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당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한 일"이라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정권 초부터 한나라당은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강남3구에 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정작 정책이 발표되자 침묵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부자정당' 이미지를 벗기 위해 '부자 증세'까지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강남3구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한 것이 역풍을 불러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만희 국토해양부 차관은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만나 강남3구 투기과열지구 해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한 차관이 "부동산 대책 발표 전 당정협의를 갖는 형식을 갖추자"고 제안했지만 이 의장은 "지금 서민 살림살이가 힘들어 죽겠다고 난리인데 강남3구의 규제완화를 위한 당정협의를 할 수 있느냐"며 거부했다. 정책위 관계자는 "정책 기조 전환을 위해 추가 감세 철회까지 했는 데, 어떻게 강남 3구를 위한 정책을 발표할 수 있겠느냐"며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도 부동산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수출마저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동산 폭락으로 내수까지 위축되면 내년 총·대선은 해보나 마나 참패란 이유였다.
당 정책위는 공식적인 '당정협의'는 생략한 대신 비공식 회의 등을 통해 정부와 부동산 규제완화 방안에 대한 조율에 나섰다. 당초 국토부는 강남3구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완화를 요청했지만, 당에선 "금융규제와 거래규제를 동시에 하는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해제하되, 금융규제는 그대로 두는 투기지구로 지정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문제는 한나라당이 수차례 약속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정부측의 요청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난 5일 당 주택정책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정진섭 의원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강남3구를 투기과열지구에선 해제하되, 투기지구로 남겨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국토부에선 "강남3구에 대한 모든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부분규제 완화는 당의 요구사항일 뿐이다. 우리는 더 큰 규제 완화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었다.
당 정책위 관계자는 "막판 협상에서 결국 정부는 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남3구 부동산 규제의 부분완화에 동의했다"며 "내년 선거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정부의 입장] 집값 전반적 하락세로 돌아서 규제명분 없고 투기우려 없어…
왜곡된 제도 바로잡으려는 것 "혹시 모를 투기 막기 위해 DTI 규제는 남겨놓았다"
'12·7 부동산 대책'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강남 부자를 위한 정책'이란 논란이 일고 있는 데 대해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그동안 왜곡됐던 규제와 제도를 바로잡아 정상적인 시장 기능이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치 논리로 접근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부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의 투기과열지구를 풀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重課)를 폐지한 이유는 우선 제도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제도는 투기와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도입한 반시장적 비상 대책이다. 양도세 중과(2003년)와 강남 3구 투기과열지구 지정(2002년)은 전국적으로 매년 20~30%씩 집값이 치솟던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이미 강남 3구 집값은 최근 한 달 새 1억~2억원씩 떨어지는 등 하락세로 돌아섰다. 집을 두 채, 세 채 갖고 있다고 양도세를 더 무겁게 매기는 나라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국토해양부 박상우 실장은 "집값이 뛰고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면 왜 풀겠느냐"면서 "지금은 투기보다 주택 시장이 무너져 서민 경제가 위협받는 게 더 걱정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사실 강남 3구와 다주택자 규제를 푸는 것에 대해 그동안 정치적 부담을 느껴왔던 게 사실이다. 올 들어 주택 경기를 살리기 위해 5번이나 대책을 내놓으면서도 두 가지 규제를 푸는 것은 금기(禁忌)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그동안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난 10월부터 정부 내에서 강남 3구와 다주택자 문제를 손대지 않고는 주택 경기가 살아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가격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부동산, 금융시장뿐 아니라 내수 경기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만큼 시장 연착륙을 위해서는 선제적인 조치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 거래가 살아나야 전·월세도 안정되고 서민 경제도 살아난다"고 지적했다.
다주택 규제를 풀면 집을 더 사겠다는 수요가 생기고 이들이 시장에 임대주택을 내놓아 전·월세금이 안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전·월세난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강남 3구에서 재건축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돼 신규 주택 공급이 증가해야 임대주택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감안됐다.
정부 관계자는 "시장 기능을 정상화하고 부작용을 막기 위해 부처 간 협의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며 "혹시 모를 투기를 막기 위해 마지막 안전판으로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를 정하는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남겨놓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