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팀의 한 해 성적은 외국인 '용병(傭兵)'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 선수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돕고, 감독과 코치들의 작전을 정확히 전달해 주는 통역 담당들의 역할도 그만큼 크다. 프로농구계에서 베테랑으로 꼽히는 서울 SK 한성수(39)씨와 인천 전자랜드 한기윤(33)씨를 통해 프로농구 통역 담당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프로농구 작전타임은 한 번에 20초 내지 1분 30초. 감독이 전술을 전달하기도 짧은 시간이다. 통역담당은 이 시간 동안 감독의 전술을 외국인 선수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작전타임 가운데 감독의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SK 한성수씨는 "작전타임이 짧아 의역(意譯)을 해서 요점만 빠르게 전달한다"고 했고, 전자랜드 한기윤씨는 "지시사항을 최대한 드라이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며 "굳이 전달하지 않아도 언성이 높아지면 감독이 화가 났다는 걸 외국인 선수도 안다"고 했다. "주접떨지 마"를 "Calm Down(캄 다운·차분하게)"으로, "정신 차려"를 "Focus(포커스·집중해)"로 통역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프로농구팀 통역 담당들의 역할은 통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통역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말한다. 한성수씨는 "통역 담당의 역할은 외국인 선수가 한국에 입국할 때 시작돼 본국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끝난다"고 했다. 팀 내 비중이 큰 외국인 선수의 곁에서 손과 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통역 담당이기 때문이다. 한성수씨는 "아침·저녁으로 컨디션 체크를 하는 것부터 외국인 선수 가족들의 장(場)까지 봐주기도 한다"고 했다. 전자랜드의 한기윤씨는 "한국 음식이 맞지 않는 선수들을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포장해와서 먹이기도 한다"고 했다. 외국인 선수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외국인 선수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 통역담당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한성수씨는 "용병 도입 초창기에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선수들이 많았다"며 "이태원 나이트클럽을 데려가 달라는 선수부터 여자친구를 선수들이 합숙하는 숙소로 데려오는 선수도 있었다"고 했다. 숙소는 부천인데 강남에 가서 음식을 사오라는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씨는 "외국 선수들의 투정을 참고 받아주기 위해서 통역 담당은 인성(人性)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시즌 중에는 외국인 선수를 관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지만, 비시즌이라고 해서 두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선수를 선발하는 작업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한기윤씨는 "비시즌 때는 선수 인터뷰를 위해 미국, 유럽, 중국, 필리핀 등지로 출장을 떠나야 한다"고 했다. 한성수씨도 "비시즌 동안 전 세계 선수들을 다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통역 담당에게 영어는 기본. 그러나 통역 담당들은 영어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했다. 한기윤씨는 "모든 통역이 마찬가지겠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필수"라며 "작전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농구 전술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기윤씨는 대학시절 농구잡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했고, 한성수씨는 대학시절 NBA 경기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던 '농구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