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년(壬戌年)인 1082년 7월과 10월 보름, 북송(北宋) 시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는 호북성 황강(黃岡)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달은 훤했고, 바람은 드물었고, 물결은 잔잔했다. '적벽부(赤壁賦)'가 탄생한 순간이다.

역시나 임술년인 1742년 10월 보름날, 순시 중이던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洪景輔·1692~1744)는 당시 최고의 화가인 양천현령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문장가인 연천현감 신유한(申維翰·1681~1752)을 불러들였다. 셋은 660년 전 소동파처럼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일대인 삭녕 우화정(羽化亭)에서 웅연(熊淵)까지 40리 길을 연강(漣江·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했다. 소동파 따라 하기가 조선 사대부 사이에 유행이었던 때. 셋은 이날의 뱃놀이를 화첩(畵帖) 세 벌로 남겨 한 벌씩 나눴다.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홍경보와 신유한이 글을 쓴 이 화첩 이름은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겸재 정선의 1742년작‘웅연계람’.‘ 연강임술첩’에 실린 그림이다.

29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조선후기 산수화전:옛 그림에 담긴 봄·여름·가을·겨울'에는 '연강임술첩' 세 벌 중 한 벌이 전시된다. '연강임술첩' 세 벌 중 한 벌은 행적이 묘연하고, 두 벌은 개인 컬렉터가 소장 중이다. 이번 전시품은 일본으로 반출됐다 개인 컬렉터가 사들인 것으로, 도록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전시장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당시 66세로 최고 전성기였던 정선은 '우화등선(羽化登船·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熊淵繫纜·웅연나루에 정박하다)'이라는 그림 두 점을 통해 이날의 뱃놀이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우화정에서 배에 오른 관찰사 일행은 배를 타고 임진강을 따라 웅연으로 이동한다. 웅연에 도착하니 달이 뜨고, 횃불을 든 사람들이 일행을 마중 나온다. 해질녘 하늘은 옅은 먹으로 은근히, 강가의 벼랑은 짙은 먹의 부벽준(斧劈��)으로 대담하게 표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처럼 내러티브(narrative)에 따라 그림 하나에 같은 인물이 여러 번 등장해 시점 이동을 하는 것도 흥미롭다. 전시를 기획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정선의 실경산수와 기록화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걸작"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는 이 밖에 창강(滄江) 조속(趙涑·1595~1668)의 '추강(秋江)' 등 그림 50여점이 나온다. (02)733-5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