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25일 밤 벨기에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춘다고 발표했다. '정치적 무정부 상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금융부문과 채무상황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다음날인 26일 아침 알베르 2세 국왕과 벨기에 '임시(caretaker)정부'의 이브 레테름 총리가 긴급 회동했다. 벨기에는 작년 6월 총선 이후 지금까지 약 18개월(26일 기준 531일째)간 정부 구성에 실패해 세계 최장기 '공식 정부가 없는 국가'가 됐고 그 때문에 정부도 임시정부다.

이날 회동 후 국왕과 레테름 총리는 성명을 내고 각 정파에게 "월요일(27일) 채권시장이 개장하기 전에 예산안 협상을 하고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26일 밤 벨기에 6개 정당 대표들은 "밤샘 협상 끝에 올해 예산의 10%인 113억유로(약 17조4000억원)를 내년에 삭감해 재정적자를 감축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로써 18개월째 반목해온 벨기에 정치권이 초유의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접점에 다가섰다고 27일 보도했다.

연정 구성 후 차기 총리가 유력시되는 엘리오 디 뤼포 왈롱지역(프랑스어권) 사회당 대표는 "이번 예산안 합의는 새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에도 중요한 분수령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S&P의 신용등급 강등 하루 만에 이런 변화가 나오자 영국 일간 가디언은 "S&P의 '한 방'이 벨기에 정치의 구세주가 됐다"고 보도했다.

벨기에는 작년 6월 13일 총선 직후부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정당들 간의 협상이 이어져 왔으나 모두 실패해 지금의 정부 부재 상태에 이르렀다. 벨기에는 인구 1100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강대국 사이에 낀 복잡한 역사 때문에 남부 왈롱(프랑스어권) 지역과 북부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로 나뉘어 이들 간의 갈등이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