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의 지구사

캐럴 헬스토스키 지음|김지선 옮김
휴머니스트|232쪽|1만5000원


'여름엔 수박 겨울엔 이것.' 본래 18세기 이탈리아 나폴리 빈민들이 허기를 달래던 주식이었다. 하지만 훗날 이걸 맛보기 위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탈리아 요리사를 초빙하기까지 한다. 1990년대 주민들은 주려 죽고 있을 때였다. 냉전 말기 러시아·동유럽을 뒤흔든 첫 번째 '자본주의 음식'이기도 했다.

200여년 피자의 진화사가 일목요연하다. 갖은 재료를 얹은 이 둥글납작 빵의 시작은 하찮기 그지없었다. '피노키오의 모험'을 쓴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1826~90)의 첫 품평이 이랬으니. "굽다가 태운 크러스트의 시커먼 색, 마늘과 앤초비의 희끄무레한 광택, (…) 여기저기 뿌려진 토마토 조각의 붉은빛이 어우러진 피자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걸맞은 오물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는 2006년 이베이 자선 경매에 나올 피자의 호화로움을 상상이나 했을까. 2000파운드에 낙찰된 얇은 빵 위엔 식용 금, 최고급 코냑에 재워둔 바닷가재, 샴페인에 담근 캐비어, 스코틀랜드산 훈제 연어, 사슴고기 등이 화려했다.

피자의 변신과 도약은 1970년대 미국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혁신 덕이었다. 그제야 나폴리는 종주권을 주장하며 1984년 '정통나폴리피자협회(VPN)'를 결성하고 피자점에 회원증을 발급하기 시작했다. 2004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당시 총리는 나폴리 피자 보호법까지 통과시켰다. 지금도 이탈리아는 미국이 피자를 망쳐놓았다고 투덜댄다. 하지만 정작 2007년 피자 월드컵 최고상은 미국과 일본 요리사에게 돌아갔다.

피자는 한갓 변방의 음식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타협하고 견뎌내며 승리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읽는 내내 머리 한구석에서는 '한식 세계화'라는 화두가 점멸한다.

책에는 몇 가지 별미도 등장한다. '피자 요리법' 외에 한국어판에는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를, 잘 차린 피자의 토핑처럼 얹어놨다.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 중 하나로 '치즈의 지구사' 편과 함께 출간됐다. 음식문화사에 밝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감수하고 머리말까지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