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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래된 숲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서소울 옮김
이순|606쪽|2만5000원

아버지는 늙고 가난한 고집쟁이, 아들은 젊고 가난한 고집쟁이였다. 아버지는 희귀 새와 맵시벌 추적에 평생을 바쳤고, 아들은 "아버지와 다르게 살겠다"는 일념으로 아버지가 추구한 박물학 대신 새롭게 떠오르는 생물학의 다른 갈래로 갔다.

이 책은 미국 동물행동학자 베른트 하인리히(71)가 아버지 게르트 하인리히(1896~1984)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추적한 회고록이다. 2차 대전 이후 생물학의 무게중심이 종(種)을 채집하고 분류하는 박물학에서 유전학·생리학·생태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하인리히 일가의 뿌리는 보로브케. 한때 독일 땅이었다가 훗날 폴란드 땅이 된 서(西) 프로이센의 목가적인 평원이다. 아버지 게르트는 대지주의 외아들이었다. 말이 풀을 뜯고 꿀벌이 붕붕대는 영지에서 새와 곤충을 채집하며 어린 날을 보냈다.

1차~2차대전 사이의 20여년이 아버지 인생의 절정이었다. 베를린자연사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인도네시아·불가리아·이란으로 잇달아 장기간 표본 채집 원정을 다녔다.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하면서 보로브케가 폴란드에 넘어갔다. 이 땅을 되찾겠다며 독일이 폴란드로 진격해 2차 대전이 났다. 아버지는 독일 혈통이지만 '친폴란드계'로 분류됐고, 숙청을 피하기 위해 43세의 나이로 독일군에 입대했다. 그는 꽁꽁 언 시신이 쌓인 러시아 전선에서 "전쟁이 끝나면 다시 자연 연구에 전념하겠다"는 일념으로 환멸을 견뎠다.

그러나 생물학의 중심은 이미 박물학에서 다른 신생학문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냈다. "대자연 자체가 연구소이자 연구대상이던 구시대의 생물학이 현대 생물학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409쪽)

1951년 아버지는 박물관에 자리를 얻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러나 정규 학위 없이 '지는 학문'에 평생 종사해온 아버지를 받아주는 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는 메인주(州)의 황무지에서 막노동을 하는 한편, 간간이 박물관 의뢰를 받아 동물 표본을 만들어 주는 신세로 영락했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유전학·생태학 같은 신생 학문을 '양복쟁이들의 엉터리 과학'이라고 깔보며, 맵시벌 분류를 계속했다. 10대에 접어드는 아들은 아버지에게 반발했다. 맵시벌 아과에 속하는 종은 모두 6000여개로, 아버지 게르트는 그중 1479개 종을 수집해 분류하고 명명했다. 엄청난 끈기와 열정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아들 눈에는 "딱히 학문이라고 하기도 뭣한 것"으로만 보였다(114쪽).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잇길 바랐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비웃는 신학문을 택했다. UCLA와 버클리대 교수를 거쳐 버몬트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동물들의 겨울나기'(에코리브르), '숲에 사는 즐거움'(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왜 달리는가'(이끼북스) 등 국내에도 번역된 명저를 여러 권 썼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나이 먹어 현명해진 아들이 젊은 아버지의 좌충우돌을 연민을 갖고 껴안은 기록이다. 아버지는 모순에 찬 남자였다. 박학다식했지만 정규 대학교육은 받지 않았다. 대지주 아들이었지만 야생의 밀림에서 가장 빛났다. 아들 대학 보낼 돈은 없어도 표본 제작할 돈은 있었다. 본처 아넬로제에게 생활을 떠넘기고 자신은 처제 리제로테, 아이들 가정교사 힐데가르데와 불꽃 같은 연애를 했다. 저자는 힐데가르데의 아들이다.

인생이 화해를 위해 마련한 기묘한 조우가 독자들 코를 찡하게 한다. 아버지가 죽은 뒤, 저자는 어린 딸을 데리고 미국자연사박물관에 갔다가 '아라미도프시스 플라테니'라는 학명이 붙은 희귀한 뜸부기 표본을 봤다. 실물을 본 사람이 드문 건 물론, 표본조차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궁극의 희귀조'다. 1931년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갖은 고생 끝에 이 새를 포획해, 저자 눈앞에 놓인 표본으로 만든 사람이 바로 아버지 게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