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의무자라면 누구나 지방세의 일종인 주민세(住民稅)를 낸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세를 거둬 지역의 행정과 주민 복지 등에 사용한다. 그런데 주민세를 납부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장이 마을세(이장세·里長稅)를 납부하라고 한다면?
지난달 26일 국민권익위에는 '마을 이장이 이장세 납부를 강요한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을 제기한 W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이장이 다른 세금고지서와 함께 이장의 계좌번호가 적힌 고지서를 보내 이장세를 납부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경기도 여주군의 한 마을에 이사와 리(里) 단위 행정구역에 처음 거주하게 된 그는 "이장세 납부를 거부하자 이장이 '마을의 관례인데 남들이 다 내는 걸 왜 내지 않으려 하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고 했다.
이장세의 법적 근거는 지방자치법·세법 어디에도 없다. 일제시대, 농촌마을 이장들이 수당도 받지 않고 주민들의 민원과 심부름을 처리하는 것에 대한 보답의 뜻으로 마을 사람들이 곡식을 거둬들여 이장 수고비 명목으로 제공하던 모곡(募穀)제도가 이장세의 기원. 이후 곡식 대신 이장에게 현금을 주게 되면서 모곡은 지역에 따라 이장세, 이정세(里政稅) 등으로 불리며 농촌마을의 관습으로 남았다.
2004년 이후 이장은 매달 24만원의 수당과 자녀장학금, 단위농협 영농회장 수당 등을 지급받게 됐다. 대다수의 농촌마을에서는 이장세를 폐지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이를 징수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귀농인구가 크게 늘어 이장세를 두고 도시출신 주민과 이장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광주광역시에서 최근 전남 담양으로 전입한 한 주민은 "마을 이장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전혀 없는데도 이장세를 내라고 한다"며 "주변 관계를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마을마다 이장세를 징수하는 방식이나 액수도 다르다. 계좌번호가 적힌 고지서를 발송하거나 심지어 이장이 가가호호 방문해 직접 이장세 납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장세액도 2만~6만원 선으로 마을마다 편차를 보였다. 이장세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자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이장(통·반장 포함) 수고비 등의 모금관행에 관한 제도를 개선하라'고 행정안전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민원제기는 계속됐다. 지난해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선 일부 이장들이 주민들에게 이장세를 부당하게 요구하다 주민들이 집단 반발을 하기도 했다. 경북 영덕에선 이장세 징수문제로 이장과 주민이 말다툼을 벌이다 서로를 폭행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3월 전남 구례의 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선거 공약으로 이장세를 걷지 않겠다고 해놓고 이장세를 걷는다'는 이유로 이장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행안부는 2008년과 2009년에 이어 올해에도 각 지방자치단체에 이장세를 걷지 못하도록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재차 내려보냈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여전히 이 세를 걷는 마을이 전체 마을의 5~20% 정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민원을 접수했던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작은 마을에서 이장에 대한 민원을 제기하면 따돌림을 당할까 우려해 정식 민원을 꺼리는 편이라 이장세를 걷는 비율을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국이통장연합회 이준규 회장은 "연합회 차원에서 협조공문을 내리는 등 노력을 해 이장세를 없애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