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유승민 최고위원은 24일 "'부자 증세(增稅)'를 (내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울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당내 소장파 일각에서 운을 띄우고 홍준표 대표가 바람을 잡기 시작하던 부자 증세 정책이 총선 공약론으로까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박·쇄신·당권파가 손잡고 부자 증세를 추진하는 모양새다.

확산되는 부자 증세론

그간 한나라당의 부자 증세론은 주로 고소득층의 소득세율 인상에 맞춰져 왔다. 현재 과표 기준으로 연(年)소득 8800만원 이상에 대해서는 최고 세율 35%가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쇄신·소장파 의원들은 "대기업 부장과 재벌이 같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성식 의원은 연소득 1억5000만~2억원 초과의 경우 최고 세율을 38~40%로 높이자고 주장해 왔다. 김 의원은 ①안으로 8800만~1억5000만원 구간 35%, 1억5000만원 초과 38% ②안으로 8800만~2억원 구간 35%, 2억원 초과 40%를 제시했다. 2009년 귀속소득(재산 내지 소득에서 얻어지는 소득) 기준으로 과표 1억5000만원 초과자는 7만6807명, 2억원 초과자는 4만4129명이다. 김 의원은 향후 5년간 세수 증대 효과가 1안은 5조4190억원, 2안은 7조1269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저소득층에 대한 각종 공제 혜택으로 세금을 전혀 안 내는 근로자는 2010년 기준으로 592만9000명이다. 전체 근로자 1517만여명의 39.1%에 해당한다.

유 최고위원은 이날 한발 더 나아가 "OECD 국가들이 시행하는 주식 양도 소득에 대한 과세 등 노무현 정부에서 논의돼 오던 게 있다"며 "법 개정이 필요한 근로장려세제(EITC) 강화도 포함해 종합적인 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EITC는 근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저소득 가구에 근로장려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인데, 이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6년 '양극화 해소'라는 명분으로 다각적인 증세 방안을 검토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추진하지 못했었다.

"복지 확대 위한 재원 필요"

박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자는 이른바 '줄푸세' 공약을 내놨었다.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춘 공약이었으나 지금의 기류는 정반대다. 최근 친박 중진인 홍사덕 의원은 공개적으로 '버핏세' 도입을 주장했다. '버핏세'는 미국에선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을 근로소득만큼 올리자는 것이지만 한나라당에선 '부자 증세'란 폭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친박의 한 초선 의원은 "지난 4년 가까이 야당의 '부자 감세' 공세에 시달려 왔고 특히 20~40세대에서 '한나라당은 부자들의 정당'이란 이미지가 굳어졌다"며 "이런 이미지를 일거에 해소하기는 어렵겠지만 부자 증세 같은 총선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쇄신파의 정두언 의원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복지 확대 공세를 펼칠 텐데 한나라당이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 복지·친서민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며 "주식 양도 소득 과세도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의 자문그룹에 속한 한 교수는 "스웨덴이 부유세를 도입했다가 조세 저항 때문에 폐지한 것처럼 특정 계층을 겨냥한 증세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