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피리 외길을 살아온 명인은 그 예술 인생을 격려하는 상을 받자마자 그대로 국악계와 불우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18일 저녁 서울 코리아나호텔 글로리아홀에서 열린 제18회 방일영국악상 수상자 가산(笳山) 정재국(鄭在國·69·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보유자) 선생의 시상식장에서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정씨가 방일영문화재단 조연흥 이사장으로부터 상패와 상금을 받자마자 상금(5000만원)을 즉석에서 도로 내놓은 것. 사회자인 국악인 김성녀씨는 "상금 전액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장학금으로, 조선일보사 불우 이웃 돕기 성금으로, 국립국악원 후원회 '지음'의 후원금으로, 21세기피리음악연구회 연구비로 쓰시기로 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곁에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던 부인 남궁효근(64)씨는 "상금은 우리 삶의 보너스잖아요. 당연히 더 좋은 곳에 쓰여야지요. 연주가로, 교육자로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온 남편이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는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자마자 결심한 일"이라고 했다.

시상식에 이어 열린 연주 무대에 참석자들은 더욱 감동하는 분위기였다. 황금색 예복으로 갈아입은 명인은 기도하듯 두 손 모아 피리를 쥐었다. 평조회상 8곡 중 첫째 곡인 '상령산'을 피리로 혼자 연주해 정악의 진수를 보여줬고 박수갈채는 더욱 뜨거웠다.

정재국 선생은 1966년 국립국악원 전임 악사로 발령받은 후 199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부교수로 옮길 때까지 32년간 국립국악원에서 연주자로 활동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정악곡뿐만 아니라 피리산조, 피리협주곡 등을 골고루 개척하며 국악 연주와 연구에 힘썼다. 지금까지 55년간 피리를 불어왔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피리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는 사람"(황병기 심사위원장)이었다.

18일 시상식 후 축하 공연에서 정재국 선생이 피리로‘상령산’을 연주하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는 역대 방일영국악상 수상자인 무형문화재 '배뱅잇굿' 보유자 이은관 선생(9회), 경기민요 보유자 이은주 명창(13회), 흥보가 보유자 박송희 명창(17회)과 심사위원장인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심사위원인 이보형 한국고음반학회 회장, 송방송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안숙선·김영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재숙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그리고 내빈으로 박범훈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한명희 이미시문화서원 좌장 등을 포함해 민의식(가야금), 김한승(아쟁), 곽태규(피리), 홍종진(대금), 강사준(해금), 최충웅(거문고) 등 국악인들이 참석했다. 또 조선일보사 방우영 상임고문, 방상훈 사장과 방일영문화재단의 조연흥 이사장, 윤주영·이종식·김용원·최병렬 이사, 한백현 감사, 도서출판 기파랑 안병훈 사장, TV조선의 장윤택 전무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