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할 때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언제나 백발이 성성해진 허리 굽은 노인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는데, 자기가 사는 동네에 있는 작은 사진관에 들어간 노인이 액자 먼지를 닦고 있는 사진관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인 양반, 사진 한 장 찍으십시다. 예쁘게 찍어줘요. 내 영정 사진으로 쓸 거라우.” 단지 상상뿐인데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자꾸 마른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곱게 늙은 노인의 얼굴이 한가득 담긴 사진 프레임을 상상하면서, 나는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어른의 삶이란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이 나쁠 리 없다고 믿는 건 내 오래된 편견일 테지만, 적어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이란 언제나 '삶' 쪽에 더 가까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장면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다. 나이 든 아버지에게 작은 사진관을 물려받은 30대 중반의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죽음과 대면하게 된 이 남자는 어느새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그의 곁에는 자식을 먼저 보내게 될 늙은 아버지와 가끔 한 번씩 집에 들러 오빠와 아버지를 들여다보는 결혼한 여동생 정숙만 있다. 늙은 아버지에게 비디오 리모컨 작동법을 가르쳐주던 어느 날, 기계 작동 방법을 몰라 몇 번이고 실수하는 아버지에게 버럭 화를 낸 그는 자신의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몰라 남몰래 흐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주차 단속원인 다림이 정원의 사진관에 나타난다. 생의 활기가 느껴지는 밝고 젊은 그녀. 다림은 매일 같은 시간에 사진관 앞을 지나고, 단속한 차량 사진을 정원의 사진관에 맡기면서 어느새 사진관 벽에 걸린 그림처럼 오롯이 사진관 속 풍경이 되어 간다. 그곳에서 선풍기 바람을 맞고, 꾸벅거리며 짧은 낮잠을 자고, 물끄러미 사진관 밖 풍경을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정원의 물 같은 담담함에 반한 그녀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고 이들의 데이트가 시작된다.
시한부 삶을 사는 남자와, 그를 '아저씨'라 부르는 젊은 여자의 사랑이 평탄할 리 없다. 정원의 건강 상태를 모르는 다림은 그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도 모른 채 문 닫힌 사진관을 맴돌며 그를 원망한다. 그리고 서서히 그들은 엇갈려 멀어지고, 정원은 죽음을 앞둔 어느 날, 스스로 영정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 앞에 앉는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라는 유언 같은 마지막 말과 함께.
군산의 한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초원 사진관'은 10년 세월을 넘기며 문이 닫힌 채 자리만 남아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군산 서초등학교나, 낮게 깔린 툇마루에 앉아 발톱을 깎고, 먼 풍경을 바라보던 정원의 군산 집은 너무나 평온해서 마치 시간이 우물처럼 고여서 정지해버린 느낌이다. 그것은 "좋은 앵글은 없다. 다만 나쁜 앵글은 있다. 그건 작위적인 것이다"고 믿는 1935년생 촬영 감독의 한결같은 고집과 '넣을 것'이 아니라 '뺄 것'을 생각했던 한 젊은 감독의 고집이 만들어낸 풍경들이었다.
내게 군산은 늘 '이성당'이라는 동네 빵집으로만 기억됐다. 아마도 그곳에서 먹던 옛날 팥빵 맛이 언제나 그리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군산은 또한 '복성루'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3대 짬뽕 중 하나라는 그곳의 고기짬뽕을 먹으려고 긴 줄 서기를 한 번도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군산은 내게 '초원사진관'의 도시이다. 비록 자리만 남고, 그 옆에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의 생뚱맞은 술집이 생기긴 했지만, 나는 사라져 가는 풍경들 속에서도 시간의 주름을 본다.
허진호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이 영화의 시작이 사진 한 장에서 출발했다는 대목을 발견했다. 활짝 웃고 있는 가수 김광석의 영정 사진이라고 했다.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할 수도 있는 것이 영화고 소설이라는 점에 나는 문득 아득함 같은 걸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래 제목이었던 '즐거운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중얼거렸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8월에 시작해 12월에 끝난 사랑이 어디 이것 하나뿐이랴. 이 영화가 이율배반적으로 슬프지만 따뜻한 죽음과 닮아 있었던 건, 이 영화를 찍은 유영길 촬영 감독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
●8월의 크리스마스 : 죽음을 생각할 때 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언제나 백발이 성성해진 허리 굽은 노인의 모습과 함께 시작되는데, 자기가 사는 동네에 있는 작은 사진관에 들어간 노인이 액자 먼지를 닦고 있는 사진관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주인 양반, 사진 한 장 찍으십시다. 예쁘게 찍어줘요. 내 영정 사진으로 쓸 거라우." 단지 상상뿐인데도 그 장면만 생각하면 자꾸 마른 낙엽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