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간의 경쟁이 점차 격화하고 있다.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을 놓고 치열하게 '진영 만들기' 싸움을 벌이던 양국은 이젠 직접 설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촉구하고 나섰고,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주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시종일관 중국을 겨냥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위안화 절상을 염두에 두고 "미국은 중국의 평화스러운 성장을 환영한다"면서도 "중국의 역할은 과거 20~30년전과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는 중국을 향해 "수준에 맞게 행동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비공개 양자회담에서도 '꽤 직접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미국 경제가 중국의 경제정책 변화로 점점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있다"고 후 주석에게 토로했다고 미국 고위 관료는 전했다.
미국의 요구는 중국 위안화 절상이다. 중국 정부가 위안화 절상을 늦출수록 상대적으로 미국 수출상품 가격은 비싸지고 중국은 싸져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작정한 듯한 오바마 대통령의 행동이 중국을 겨냥함과 동시에 자국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한층 끌어올리려는 의도라고도 분석했다.
일단 미국은 중국과 '체스게임'에서 전략적으로 한발 앞서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TPP 체결은 미국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미 TPP에 참여하기로 한 9개국과 미국간 무역량은 미국 전체 무역의 6%에 그친다. 그러나 일본이 TPP 참여 의사를 밝혔고, 캐나다, 멕시코까지 합세하면서 판이 커졌다. 미국은 사실상 APEC에 속한 21개 회원국과도 무역이 자유로워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이면에는 중국의 기를 눌렀다는 승리감도 있다. 백악관의 한 관료는 "유럽 재정위기에서 중국이 재원 마련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국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미국이 그 중심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후 주석과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주도에 일본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TPP에 대해선 비판 수위를 높였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경제 뿐 아니라 안보나 정치 분야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신호를 명확히 전달하면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TPP는 APEC 정식 의제가 아닌데도 미국 때문에 주객이 전도됐다"며 "미국은 TPP를 통해 자국 수출을 늘리려는 것 목적"이라고 날을 세웠다.
다만 미국의 패권 장악 성공 여부를 단언하기에 이르다는 시각이 많다. 미 워싱턴의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패트릭 크로닌 아태안보프로그램 소장은 "중국의 반응에 달렸다"며 "중국이 침착하게 대응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끈다면 지역내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인 반면 공격적으로 맞받아친다면 다른 국가들이 미국 편에 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본이 TPP에 최종 참여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일본 정치권과 내부 여론의 반발로 TPP 참여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TPP 참여국들도 자국 산업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반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