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보〉(235~251)=함께 시작했지만 종국(終局) 시각은 제각각이다. 2회전 여덟 판 중 유일하게 남은 이 판을, 먼저 대국이 끝난 너덧 명의 프로들이 삥 둘러싼 채 묵묵히 관전한다. 오늘의 승자들과 패자들이 섞여 있다. 저 중엔 패장의 그늘진 표정을 밖에 보여주기 싫어 퇴장을 미루는 기사도 분명히 있다. 착수를 재촉하는 계시기(計時器)의 녹음된 초읽기 소리가 한층 처절해져 간다. 언제 들어도 빚쟁이의 악다구니보다 더 비정한 기계음이다.
백이 △에 붙인 장면. 별일 없어 보이지만 이곳서도 걸려들기 딱 좋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240이 최후의 노림수. 흑이 넉 점도 아깝다고 불쑥 242로 이었다간 엄청난 음모에 말려들게 된다. 참고도를 보자. 7까지 준비공작 후 8, 10이 강인하다. 이후 18까지, 귀신이 곡할 수순으로 대마가 살아간다. 물론 형세도 역전이다.(13…□)
251도 생략하면 백 '가', 흑 251, 백 '나'가 성립한다. 긴장을 풀면 언제 귀신에게 잡혀갈지 모를 무시무시한 전쟁터다. 하지만 기나긴 '스릴러'는 251이 놓이면서 마침내 끝났다. 계가한다면 반면(盤面)으로 흑이 10집 좀 넘게 이긴 형세. 둘러쌌던 동료 프로들이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의견을 개진한다. 6시 40분. 밖은 어느새 땅거미가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