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자칼

1975년 프랑스 경찰 2명과 정보원 1명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베네수엘라 출신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본명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62)이 다시 법정에 선다.

자칼이란 별명은 첩보 스릴러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한 '자칼의 날'에서 따왔다. 1970년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에 들어간 자칼은 1975년 오스트리아 의 OPEC 본부 테러 사건(사망 3명)을 주도한 뒤 각료 11명을 비롯해 60여 명을 인질로 잡고 항공기를 요구해 아프리카로 달아났다. 이후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를 넘나드는 도주 행각을 벌였다. 당시 소설 속 청부 살인업자처럼 신출귀몰하다 해서 영국 언론이 그를 자칼로 부른 것이다. 자칼은 19년에 걸친 프랑스 정보국의 끈질긴 추적 끝에 1994년 수단의 한 병원에서 체포됐다.

자칼은 1982~1983년에 연이어 일어났던 테러 범죄 4건을 주도한 혐의로 오는 7일 다시 법정에 선다. 이번 재판은 12월 16일까지 계속된다. 자칼은 자신의 아내가 포함된 테러리스트 2명이 1982년 파리에서 체포되자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연쇄 테러를 저질렀다. 1982년 3월 파리·툴루즈 열차 폭탄 테러(사망 5명·부상 28명), 1982년 4월 파리 샹젤리제 거리 부근의 아랍계 신문 폭탄 테러(사망 1명·부상 66명), 1983년 12월 생샤를르 역 폭탄 테러(사망 2명·부상 34명)와 파리·마르세유 TGV 열차 폭탄 테러(사망 3명·부상 13명) 등으로 인하여 사망자 11명, 부상자 141명에 이른다.

프랑스는 사형 폐지국이기 때문에 이번 재판에서 추가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더라도 사면이나 석방 가능성이 줄어들 뿐, 무기 징역이라는 기존 형량에는 변함이 없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그럼에도 자칼이 테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그의 변호인이 밝혔다. 자칼은 법적 혼인 상태였지만, 자신의 변호를 맡은 다른 여성과 2001년 이슬람 전통 방식으로 옥중 결혼을 했다. 2003년 출간한 옥중 수기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의 9·11 테러를 찬양했다.

오는 7일부터 열리는 재판을 앞두고 자칼은 지난달 감옥에서 11일간 단식 투쟁을 벌였다. 그는 교도소에 설치된 전화기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프랑스의 수감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자칼은 인터뷰에서 "신의 은총과 더불어 프랑스와 베네수엘라의 협상을 통해서 석방될 날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 직후 자칼은 독방 감금 처분을 받았으며 이에 항의해 단식했다고 그의 변호인은 주장했다.

자칼은 베네수엘라의 좌파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이름을 따서 그에게 일리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두 형제의 이름도 블라디미르와 레닌으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