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 선수, MVP 후보 경쟁 하차'.
한국시리즈가 끝난 지 사흘 뒤인 3일 오후. 각 언론사 프로야구 담당 기자 앞으로 이런 제목의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올해 우승팀인 삼성 구단에서 뿌린 자료였다. 삼성은 '오승환이 팀 후배인 최형우와 MVP 경쟁을 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껴 후보 경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다'고 했다.
뜻밖의 내용이었다. 오승환(29)은 올해 투수로선 KIA 윤석민과 함께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 후보에 올랐다. 1승47세이브(평균 자책점 0.63)를 올리며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3세이브(평균 자책점 0.00)로 시리즈 MVP가 됐다. 사상 첫 정규시즌·한국시리즈 MVP 동시 석권도 노려볼 만했다.
게다가 MVP 후보 선수가 공개적으로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은 전례가 없다. 정규시즌 MVP 후보는 한국시리즈 직후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발표한다. 후보 선수가 임의로 사퇴하는 것은 절차상 불가능하다. 올해는 한국시리즈 5차전 다음 날인 1일 오승환과 최형우(이상 삼성), 윤석민(KIA), 이대호(롯데) 등 후보 4명이 공표됐다.
오승환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MVP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불과 사흘 전인 지난달 31일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마무리 투수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줬다"며 "불펜 투수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MVP 욕심을 내고 싶다"고 했다. 지금껏 전업 불펜 투수가 정규시즌 MVP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문투성이의 보도자료가 배포된 지 몇 시간 뒤, 오승환과 직접 통화했다. 오승환은 보도자료가 뿌려진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내용은 맞다"고 했다. 그는 "어제 (최)형우를 만나서 '너를 MVP로 밀어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며 "오늘 아침엔 경산볼파크의 구단 사무실에 가서 A4용지에 직접 쓴 편지를 전달했다"고 했다.
오승환은 임의로 후보에서 사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후보 하차'라는 표현은 와전된 것 같다"며 "단지 나를 찍으려는 표가 형우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고 했다. 하지만 구단이 보도자료를 내면서 오승환의 '선의(善意)'는 공식적으로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코미디'가 된 셈이다. MVP는 이달 7일 KBO 출입 기자단의 투표로 선정된다. 오승환은 보도자료와 관계없이 여전히 MVP 후보다.
그렇다면 왜 오승환은 '나 대신 최형우를 지원해달라'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한 걸까. 삼성 구단과 류중일 감독은 시즌 막판부터 '최형우보다는 오승환이 MVP를 받았으면 한다'는 뜻을 종종 취재진에게 내비쳤다. 최형우로선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승환은 그런 상황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오승환은 "나라고 왜 정규시즌 MVP를 받고 싶지 않겠느냐"면서도 "그렇지만 나는 한국시리즈 MVP도 받았으니까…. 형우를 밀어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