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변모(여·45·강원 태백시)씨는 2008년 7월 대학생인 딸(26)과 자신 명의로 15개 보험에 집중 가입했다. 그해 12월 변씨는 다치지도 않은 딸에게 "보드를 타다 넘어져 다쳤다고 하라"고 한 후 병원에 입원시켰다. 자신도 고혈압과 염좌(삠)를 빌미로 수차례 입원했다. 그러나 서류상 입원일 뿐 실제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최근까지 3억원의 보험금을 받아 가로챘다. 변씨는 이 보험금을 학자금과 생활비로 썼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모(63·강원 태백시)씨는 2007년 6월 "등산을 하다 넘어졌다"며 병원에 입원했다. 5개의 보험상품에 가입한 김씨는 그 이후에도 "나무에서 떨어졌다" "고지혈증이다"라며 입원하는 등 지난 2월까지 15차례에 걸쳐 가짜 환자가 돼 보험금 1억2000만원을 받았다. 김씨는 입원 시 치료비가 전액 면제되는 의료보호대상자였지만, 정부로부터 한 달 35만원의 보조를 받아 보험료만 월 36만7000원을 냈다.
강원도 태백시 주민 400여명이 연루된 '허위 입원 보험 사기' 사건이 경찰에 적발됐다. 태백시 인구(5만여명)의 0.8% 정도가 연루된 셈으로, 금액과 연루자 숫자 면에서 사상 최대 규모 보험사기 사건이다. 경찰은 보험사기에 연루된 가짜 환자 200여명의 명단을 추가로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조사도 조속히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강원지방경찰청은 3일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입원시키거나 허위로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해 요양급여비를 챙긴 혐의로 엄모(63)씨 등 태백 지역 3개 병원장과 사무장 7명을 입건했다. 허위 입·퇴원 확인서를 발급받아 보험금을 타낸 이모(여·46)씨 등 전·현직 보험설계사 72명과 가짜 환자 김모(63)씨 등 주민 331명도 입건했다.
경찰은 "소도시 태백에서 이런 보험사기가 가능했던 것은 인구 감소로 경영난을 겪던 병원과 쉽게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소문에 솔깃한 주민들의 죄의식 결여와 부정에 대한 고발 의식 부족, 관리 감독 기관의 느슨한 지도·점검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세 병원은 2007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허위로 입원시켜 건강보험공단에 요양급여비를 부당 청구하는 수법으로 모두 17억10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보험설계사와 가짜 환자들은 허위 입·퇴원 확인서를 병원으로부터 발급받아 보험금 140억원을 부당 지급받았다고 경찰은 말했다.
이들 대부분은 염좌·고혈압·당뇨·관절염 등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 것처럼 꾸몄다. 보험설계사 출신 윤모(여·56)씨는 2005년 5월 남편과 아들, 딸, 사위 등 명의로 보험에 집중 가입했고 당뇨와 관절염, 염좌 등을 이유로 차례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지난 2월까지 이런 수법으로 병원에 입원한 날이 윤씨 889일, 남편 585일, 아들 113일, 딸 389일, 사위 44일 등 가족을 모두 합치면 2000일이 넘는다. 윤씨 가족이 허위 환자로 둔갑해 받은 보험료는 5억5000만원에 달했다.
평소 알고 있던 보험설계사의 보험사기 유혹에 솔깃해진 장모(여·59)씨도 2007년 2월부터 작년 12월까지 남편과 딸·아들 등을 수시로 입원시켜 3억2000만원의 보험금을 가로챘다.
경찰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들은 보험사기를 위해 친·인척은 물론 지인들을 보험에 가입시켜 보험료를 대납해 주고 허위 입원 방법까지 알려줬다. 병원들도 간호기록부를 작성하지 않았다. 경찰의 압수수색 당시 H병원은 진료 차트에 입원 환자가 76명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실제 환자는 11명뿐이었다.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를 상대로 "입원 기간 중 동사무소에 가서 등본도 떼지 말고 비행기도 타지 말고 카드도 쓰지 말라"는 교육까지 했다. 가짜 입원환자는 당일에만 진료받고 집으로 가는 '차트환자', 입원 처리 후 가끔 병원에 들르는 '출·퇴근 환자', 외출·외박 없이 장기간 병원에서 생활하는 '나이롱 환자' 등 유형도 다양했다. 환자들 대부분은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등 변변한 소득 기반이 없는 취약 계층으로 보험금을 타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 일부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보험사기에 뛰어들었다.
강원지방경찰청 김동혁 수사2계장은 "3개 병원 입원 치료 환자의 95%는 가짜 환자로, 지역에서 '보험금 못 타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돌아 수사를 시작했다"며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 지역에서 이런 금액과 인적 규모의 보험 사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