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 조선일보에 악연(惡緣)으로 엮여 극(極)과 극(極)의 삶을 살고 있는 두 가족의 오늘을 보여주는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하나는 작곡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씨가 평양 교외의 잔디가 깔린 드넓은 자택 마당에서 애견을 껴안고 있는 사진이다. 다른 하나는 1985년 교수 자리를 주겠다는 윤이상의 꾐에 넘어가 부인과 두 딸을 데리고 북한에 갔다가 이듬해 홀몸으로 탈출한 오길남씨의 부인 신숙자씨가 어린 두 딸과 함남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후 찍은 사진이다. 이씨는 한겨레신문사가 펴낸 '윤이상 부인 이수자의 북한 이야기'에 "남편 사망 이후 김일성 주석이 내주신 집"이라면서 "집 주변 산자락이 모두 정원인 셈이어서 철 따라 철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정겹기 그지없다"고 했다. 신씨 모녀의 사진은 오씨가 북한을 탈출하자 윤이상이 북한으로 되돌아갈 것을 종용하며 부인과 딸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와 함께 오씨에게 건넨 것이다.

독일 국적의 이수자씨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와 윤이상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통영에 와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딸 소유 이층집에 머물고 있다. 이씨는 9월 평양에서 열린 30차 윤이상음악회에 딸과 함께 참석했었다. 윤·이 부부는 김일성이 사망하자 "하늘이 무너지고 이 몸이 산산 쪼각나는 듯한 비통한 마음이지만 병중에 있어 달려가지 못하는 원통한 심정"이라고 조전(弔電)을 보냈다. 이씨의 딸은 "신씨 모녀가 (고향에) 돌아올 수 있도록 북한 당국에 힘을 써주겠느냐"는 기자 질문에 "이 여자 미쳤구먼, 미쳤어"라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통영 시민들은 통영에서 나고 자란 신숙자씨 가족 구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북한 수용소에서 딸들과 함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신씨는 요즘 "내가 죽으면 두 딸이 어찌 될지…"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포 등을 떠밀어 사지(死地)에 몰아넣고 그 충성을 팔아 호사를 누리는 윤이상의 아내와 딸의 꿈에 두 눈 부릅뜬 신씨와 두 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정의(正義)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의 사설]

[사설] 與黨이 된 시민단체와 정당정치의 붕괴
[사설] 한명숙 전 총리 또 무죄, 앞날 위태로운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