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일 전 동력자원부 장관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는 국민생활과 경제활동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세계 각국은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라크쿠웨이트 침공으로 일어난 걸프만 전쟁도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전쟁이었으며 지금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 확보 전쟁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중동과 동남아 지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의 가스 도입 문제가 1980년대부터 연구 검토돼 왔다. 우리나라의 액화천연가스(LNG) 소비량은 2010년에 약 3100만 톤에 달했는데 대부분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가스를 액화해서 배로 수송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는 앞으로 계속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도입이 매우 시급한 과제로 돼 있다.

문제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 들여오느냐이다.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스관을 북한을 경유해서 들여오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액화해서 배로 수송하는 방법이며, 또 하나는 중국을 경유하여 서해에서 해저 파이프로 수송하는 방법이다. 첫째 방법은 값이 싸고, 둘째·셋째 방법은 값이 비싸다. 가격 측면에서 보면 당연히 전자의 방식을 택해야 하겠지만 가스관이 북한을 통과하는 것은 공급의 안정성에 큰 문제가 있다. 북한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협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언제든지 가스관을 막을 수 있다.

북한은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KAL기를 폭파시켰다. 작년에는 천안함을 폭침하고 연평도를 포격하고도 시침을 딱 떼고 있다. 개성공단도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물자와 사람의 통행을 금지시키고 요구조건을 내건다. 6자 회담은 자기에게 불리하면 중단하고 또 필요하면 개최하자고 한다. NPT(핵확산방지조약)에도 가입했다가 불편하니까 탈퇴하고 국제감시단을 추방했다.

이같이 북한은 비인도적인 만행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국제협약이나 당사자 간 계약을 언제든 위반하고 파기한다. 이런 사람들과 무슨 약속이 보장되겠는가. 그들은 언제든지 가스관을 막을 수 있다. 가스관을 잠깐이라도 막았다고 생각해보라. 대한민국은 온통 난리가 날 것이다. 러시아가 보장하면 된다고 하지만 러시아도 유럽 국가들의 송유관을 막은 일이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정권이다. 또 가스관 매설의 대가로 매년 수천만~수억달러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는 고스란히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위한 무력증강에 사용될 것이 뻔하다. 우리가 현금으로 북한 무장을 지원해주는 결과가 된다.

우리의 가스 소비량은 전체 에너지의 15% 이상이고 서울의 가스 소비 비중이 30%를 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스관의 북한 경유는 우리의 에너지 공급 안정성을 북한에 맡기는 결과가 된다. 에너지는 가격도 중요하지만 공급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다. IEA(세계에너지기구)가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 에너지 비축을 권유하고 이에 따라 많은 나라가 상당량의 비상비축을 하고 있으며 우리도 1개월분 이상 비축하고 있는 것은 가격보다 공급의 안정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스관의 북한 경유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값이 비싸더라도 다른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