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양분하는 'G2 시대'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동북아에 한정해서 보면 'G2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중국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근접성 때문이다. 오늘날 동북아에서 중국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대학 등이 얼마나 될까?
1992년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교한 이후 2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이룩해낸 한·중 관계의 폭과 깊이는 냉전시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지정학적 연속성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족(漢族)과 이민족(異民族)의 시공간을 융화시켜서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시공간으로 주조(鑄造)해왔던 중국에 대해 한(韓)민족은 중화민족의 일부로 흡수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동시에 많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길항(拮抗)관계 위에서 생존해왔다. 특히 유교의 정신적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유교를 대신해서 공산주의를 앞세운 중국공산당이 만들어 온 대세는 놀랍다. 1921년 창당 당시 당원 수가 약 50명 정도였다고 보았을 때, 8000만 중국공산당은 90년 만에 160만배라는 놀라운 성장을 한 셈이다. 세계 최대 정당인 중국공산당은 다시 약 8000만명의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 의해 뒷받침된다. 현재 북한의 세습독재 체제 또한 일찍이 김일성이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2008년 서울 중심부는 '자유 티베트'를 외친 시민단체를 응징하려는 중국 유학생들이 들고 나온 오성홍기(五星紅旗)로 뒤덮였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 중국을 자극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무색하게 대규모 중국관광단이 제주도를 찾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장사를 하기 위해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유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더 많이 중국공산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 중에서도 8000만 중국공산당이 표방하는 신(新)민주주의를 긍정하고, 그러한 사상적 기초 위에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북한과의 평화통일도 보다 쉽게 이룩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한다. 앞으로 중국의 세계적 지위가 더 향상될수록 이러한 주장이 더 힘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거침없는 8000만 중국공산당이 한국에서 겁내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自由)'다. 한국의 헌법 전문(前文)이 표방하고 있는 3·1운동의 독립선언문에는 '민주'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지만, '자유'라는 단어는 세 번이나 등장한다. '자유'가 보수의 대명사인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지만, 노동자자유동맹이나 흑색청년자유연합회 같은 조직 명칭에서 보이듯이 자유라는 단어는 일제강점기부터 좌우를 불문하고 널리 애호되어 왔다. 일제강점기의 경성(京城)이 1946년 새롭게 얻은 이름도 '서울특별자유시'였다.
1972년 유신독재의 수단으로 '자유민주'라는 개념이 도입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뒤에서부터 역사를 보는 방식'이다. 3·1 독립선언문에서 보이듯이 훨씬 이전부터 '자유'의 전통이 뿌리내려 왔고, 그 결과 독재정권조차도 '자유민주'라는 개념이 헌법에 명토 박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앞에서부터 역사를 보는 방식'이다.
영어에서 '진보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리버럴(liberal)'이 '자유(liberty)'에서 나온 것처럼 한국에서 쟁취해온 자유는 인류가 발전시켜 온 자유의 진보와 궤를 같이해왔다. 법률에 의하지 않는 한 신체적으로 구속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종교를 가지거나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사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 남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새로운 정치조직을 만들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자유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등이다.
8000만 중국공산당과 만날 때 한국인들이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유'가 정작 한국 사회의 일각에서 홀대받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가 특정정당이나 특권소수층을 옹호해주는 개념인 것처럼 잘못 받아들여지게 된 데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의 자유를 양보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일부 기득권층의 책임이 작지 않다. 설사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의 더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진보의 논리가 되어야지, '자유'라는 글자를 지워버리는 것이 '진보'가 될 수는 없다.
중국공산당 일당독재가 추동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계속될수록 중국공산당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중국인들과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자유야말로 그런 중국인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다.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대체로 중국의 정신적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었던 한국에서 거꾸로 중국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정신적 가치가 바로 '자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