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주요 궁궐과 왕릉 등의 풍수해(風水害)를 보상해주는 보험에 가입해 18년간 보험료만 내고 단 한 번도 피해 보상을 청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문화재청은 피해 때마다 국고(國庫)에서 수리·복구비를 충당, 예산 낭비는 물론 업체와 유착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국회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난 1994년부터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과 정릉·광릉 등 주요 능에 대해 화재보험에 가입했다. 화재와 그 진압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보상받는 보험 상품이었다. 문화재청은 당시 이 보험에 들면서 태풍과 회오리바람, 폭풍, 홍수, 해일 등 풍수해도 보상받을 수 있는 특별 약관에도 가입해 놓았다. 비행기나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물체로 인한 피해도 보상이 가능했다.

문화재청이 18년 전부터 풍수해에 대비한 보험에 가입해놓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피해 보상을 청구하지 않았다. 1998년 집중 호우로 국보인 경복궁 경회루의 용마루가 일부 무너져내렸지만(사진) 이때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국비를 들여 복구했다.

문화재청은 올해에는 흥국화재와 보험 계약을 맺었는데 궁 4곳과 능 23곳에 분포한 건물 699동이 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보험 가입 금액은 892억원이었고 1년 보험료는 3632만원이었다. 문화재청은 수년간 한화손해보험과 계약을 맺어오다 올해 초 공개 입찰 과정을 거쳐 흥국화재로 보험사를 바꿨다.

그러고 지난여름 태풍과 호우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경복궁은 지난 7월 21일 집옥재 부근 어구 바닥 박석 13개가 급류로 이탈했고, 토사가 밀려들어와 관람로와 배수로가 무너졌으며 녹산 입구 저지대가 침수되는 피해를 보았다. 창덕궁에선 집중 호우로 북측 외곽 담장 5m가 붕괴했으며 창경궁에선 외곽 석축이 민가 쪽으로 무너져 내리는 피해가 발생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 김포의 장릉과 구리 동구릉, 남양주 홍릉과 유릉에서도 누수 피해를 보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보험사로부터 피해 금액을 보상받아야 하는데도 문화재청은 정부 예산으로 피해를 복구했다. 보험사엔 연락조차 안 했다. 올해에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난 18년간 한 번도 보험사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1998년 경복궁 경회루(국보 224호)의 용마루가 호우를 견디지 못하고 일부 붕괴했을 때도, 2006년 오랜 장마로 경회루 내림마루가 훼손되었을 때도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반면 전라남도는 진도군에 있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허유가 말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던 운림산방이 지난여름 태풍 무이파로 피해를 보자 보험사로부터 피해 금액 463만원을 보상받았다. 서울시 역시 흥인지문이 비 피해를 보았을 때 한국지방재정공제회에 가입했던 보험 덕분에 보상금 2000만원을 청구해 피해 복구에 보탤 예정이다. 궁과 능을 제외한 문화재는 소재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왜 그랬을까. 문화재청 덕분에 이득 본 곳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해마다 보험료 3000여만원을 거저 챙겨온 보험사가 있고, 피해가 날 때마다 복구 사업 용역을 따낸 업체가 바로 그들이다. 문화재청은 소규모 피해가 발생할 때는 문화재청 직원으로 구성된 직영 사업단에서 복구를 맡지만 금액이 큰 복구 사업은 대부분 업체에 맡기고 있다. 올해 김포 장릉의 정자각 및 비각 보수 사업 용역비는 2억6600만원이었고 창경궁 외곽 담장 복구 사업은 용역비가 5700만원이었다. 물론 사업 발주권은 문화재청에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서울 정릉과 선릉 등 문화재 4건 피해 복구에 25억1499만원을 투입했고, 2008년엔 경복궁 등에 12억1158만원을, 2009년 덕수궁 등에 8억3229만원을, 2010년 경복궁 등 3개 문화재 4건에 15억829만원을 썼다. 올해에는 경복궁 등 6개 문화재에 7억7421만원이 피해 복구에 들어갈 예정이다. 모두 보험 적용이 가능한 풍수해 사례였으나 일반 업체가 국비를 받아 벌이는 사업이었다고 김을동 의원실은 밝혔다. 최근 5년 새 보험사가 상당 부분 부담해야 할 수십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 됐고 대신 국가 예산이 복구 업체에 넘어간 것이다.

의문은 더 있다. 해마다 수억~수십억원대 피해가 발생하는데 문화재청이 내는 연간 3000만원대 보험료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점이다. 고작 3000만원 받아가면서 수십억원의 보상 위험을 감당할 보험사는 없기 때문이다. 김 의원실은 "최소 보험료를 내는 대신 보상 신청을 하지 않기로 이면 계약을 맺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그 대신 문화재청은 계속해서 복구 업체를 상대로 사업 '발주권'을 행사하려 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사가 피해 내역을 직접 산정했다면 복구 사업비도 문화재청이 추산한 것보다 적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문화재청의 해명도 석연치 않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화재만 보상되는 줄 알았지 풍수해가 보상되는 줄 몰랐다. 보험 내역을 미처 챙겨보지 못했다"고 했다. 약관 한번 봤다면 풍수해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는데도 문화재 전문가들이 10년 이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입찰을 통해 보험사를 바꾸었고 주변 지자체들이 풍수해 보험금을 타는 사례가 있는데도 말이다.

문화재청은 이달 초 김 의원실로부터 자료 제출 요구를 받고 난 뒤에야 지난여름 호우 피해 보상을 보험사에 요구했다. 18년 만에 처음으로 보험금을 신청한 것이다. 김 의원은 "2년 전 피해까지 보험금 신청이 가능하지만 당시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문화재청에 남아있지 않다"며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 행정이 따로 없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보험료가 지나치게 적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선 "예산이 부족해 적게 책정했던 것"이라며 "고의로 보상 신청을 하지 않은 게 아니며 복구 업체와 유착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고궁 담장이나 일부 건축물은 보험 적용을 받기 않기 때문에 예산을 초과해서 사용한 금액은 다소 적어질 수 있다"면서 "어찌 됐든 이 기회에 그간 잘못해온 점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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