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울산 학산동 골목길. 28세 청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리어카를 끌었다. 허름한 가겟방을 빌려 '울산산소'라는 간판을 걸고, 시장통과 철공소를 돌며 용접용 산소통을 판매했다. 산소통 하나를 팔면 땀에 젖은 손바닥에 쌀 한 말 값이 주어졌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와 리어카뿐이었지만 그에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 부자가 되는 꿈, 부자가 되어 자신처럼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에게 학비를 대주는 꿈이었다.

◇고액 기부자 줄 이어

가스 도매상으로 출발해 연 매출 1540억원의 산업용 가스 제조업체를 일군 이덕우(78) 주식회사 덕양 회장이 19일 울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재 1억원을 내놓았다. 부인 장선오(73)씨도 남편과 나란히 1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모금회는 "국내 유일의 개인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 첫 부부 회원이 탄생했다"고 20일 밝혔다. 부부는 "장애인·독거노인 등 기댈 데 없는 이웃에게 쓰이면 좋겠다"고 했다.

이 회장은 전쟁통에 포항 동지상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3년간 통조림회사 경리사원으로 근무하다 산소통 장사를 시작했다. 때마침 공업화 물결을 타고 가게가 쑥쑥 컸다. 리어카가 삼륜차가 되고, 삼륜차가 대형 트럭이 됐다. 그는 도매상으로 자리를 잡은 데 만족하지 않고, 일본에 오가며 독학으로 산업용가스 제조기술을 익혀 아세틸렌 공장을 세웠다(1974년). 이후 수소·혼합가스·암모니아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 회장은 개인 돈 5억5000만원을 들여 장학재단을 만들고, 매년 회사 순이익의 3∼5%를 보탰다. 지금까지 청소년과 대학생 543명이 혜택을 봤다. 지난 4월에는 울산대에 50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19일 울산 MBC 컨벤션에서 이덕우(왼쪽)·장선오씨 부부가 총 2억5000만원의 기부금 전달식을 가졌다. 두 사람은 최초의 부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부부는 "좋은 일에 쓰이면 됐지, 굳이 알릴 것 있나 싶어 쑥스럽다"면서 인터뷰를 사양했다. 부부는 30년 넘은 단독주택에 살고, 식당 가면 반드시 종이냅킨을 한 장만 뽑아 쓸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 말고도 '아너소사이어티'에 새 회원이 몰리고 있다.

박성중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20일 "이달 들어 10명이 아너소사이어티에 새로 가입했고 또 다른 10명이 기부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기부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데도 여러 이유로 망설이던 분 가운데 조선일보 '자본주의 4.0 제2부―나누는 사람들' 기사를 읽고 기부를 결심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사업 망했을때 기부 결심해"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나 끼니를 거를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박병출(49) 태현메가텍 대표는 공고 졸업 후 지게차 임대회사 직원으로 일하며 경남대 기계공학과를 마쳤다. 1989년 기계 부품 제조업체를 차린 그는 사업이 차차 안정되자 2006년부터 매년 동네 고등학생 4명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장학금을 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더 있을 텐데…' 싶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몰랐다"면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라 해도, 그 돈 역시 사회로부터 받은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 대표는 앞으로 15년쯤 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총 4억원을 기부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대전에서 용전놀이랜드를 운영하는 김진희(38)씨는 지난 7월부터 이벤트를 기획해 고객들 이름으로 대전 동구청에 월 1000만원어치씩 쌀을 기부하다가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김씨는 "어렵게 자란 남편이 '어른이 되면 사회복지 사업을 하고 싶었다'는 말을 늘 했다"면서 "IMF 외환 위기로 사업이 망했을 때 '재기하면 남을 돕자'고 결심했는데 그걸 실천할 수 있어 행복하고, 네 딸 앞에 자랑스럽다"고 했다.

최영돈(59·여행가)씨는 10년째 매년 1000만~2000만원씩 육군3사관학교와 이화여대에 기부금을 내오다 이번에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그는 "아들이 언젠가 '기부 그만 하고 우리한테 물려주시지…' 하고 볼멘소리를 하기에 '돈이란 게 3대(代)를 못 간다. 언젠가 없어질 돈이라면 살아생전에 의미 있게 쓰고, 너희에겐 올바른 정신을 물려주겠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최씨는 "기부하는 행복,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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