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 시퍼런 철권통치로 영원히 권세를 누릴 줄 알았던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가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시민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248일에 걸친 리비아 시민혁명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한때 전멸 직전까지 몰렸던 시민군은 나토(NATO)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후 끈질기게 밀어붙여 42년 독재자의 머리에 총을 쐈다.

튀니지이집트에서 먼저 타오른 시민혁명의 불꽃이 리비아로 옮겨 붙은 것은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였다. 카다피 정권에 의해 희생된 시민들의 유족이 벵가지 경찰서 앞에서 벌인 작은 시위가 수많은 지지자를 거리로 이끌어내면서 8개월에 걸친 리비아 내전의 단초가 됐다.

리비아 시민군이 20일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를 장악한 후 환호하고 있다. 리비아 새 정부인 국가과도위원회는 이날 시르테를 빠져나가던 카다피를 사살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정권은 초동 진압을 위해 정부군과 용병을 동원해 시위대에 직접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2월 26일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반인도주의 범죄' 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반정부 세력은 3월 5일 벵가지에서 국가과도위원회(NTC)를 발족하며 카다피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내전 태세에 돌입했다.

국제사회는 프랑스 정부가 NTC를 리비아의 유일한 합법적인 기구로 공식으로 인정한 것을 신호탄으로 개입에 나섰다. 유엔 안보리가 3월 17일 카다피군의 민간인 학살을 저지하기 위해 리비아 영공에 비행금지구역(NFZ)을 설정하며 내전은 중대한 국면의 전환을 맞이했다. 나토군 전투기가 리비아 상공에 출현해 카다피군의 탱크와 미사일 발사대, 지휘소 등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카타르 등 일부 아랍 국가도 리비아 반군을 지원했다.

NTC가 이끄는 시민군은 총 한 번 쏴본 적 없는 자원병으로 구성된 오합지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4월부터 8월 하순까지 나토 공군의 엄호를 받으면서 서부의 전략 요충지 미스라타와 북동부 석유 수출항 브레가 등으로 서서히 점령 지역을 넓혀나갔다.

전략 요충지들을 차례로 접수한 시민군은 마침내 8월 21일 '인어의 새벽' 작전을 벌여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했다. 이틀 뒤에는 카다피와 핵심 측근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던 바브 알아지지야 요새를 함락했다. 그러나 정작 카다피 본인의 행적은 묘연했다. 고향인 시르테 또는 중부 사막 도시에 은신 중일 것이라는 관측만 무성하게 나돌았다.

트리폴리 함락 이후 두 달 동안 지루한 수색과 추격전을 벌이던 시민군은 마침내 20일 시르테에서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무려 3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리비아 내전이 막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