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사건'에서 검찰과 법무부는 실수와 잘못을 여러 번 저질렀다. 우선은 1997년 4월 3일 밤 조중필(당시 23세)씨를 살해한 뒤 핏자국이 흥건한 옷을 입고 현장을 벗어난 에드워드 K. 리(당시 18세)와 아더 존 패터슨(당시 18세) 가운데 에드워드의 단독 범행이라고 단정했으나, 훗날 에드워드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다.
에드워드를 변호했던 김동섭 변호사는 11일 "당시 수사 기록, 증인 진술 등을 보면 패터슨이 범인임이 확실했고, 검사 출신인 내가 보기에도 '부실 수사'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당시 담당 검사였던 박모 변호사는 "그 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며 입을 닫았다.
두 번째는 에드워드에 대한 무죄 확정 판결이 나기 한 달 전인 1999년 8월 24일 패터슨이 미국으로 달아나도록 방치한 점이다. 패터슨은 범행 현장의 흉기를 미8군 영내 하수구에 버린 혐의(증거인멸)로 징역 1년6월만 선고받았으며, 1998년 8월 특별사면에 따른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조씨 유족들의 고소로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패터슨의 출국정지 기간을 3개월씩 연장하다 1999년 8월 23일 만료 당시 실수로 연장 신청을 놓쳤고, 패터슨은 이튿날 출국해버렸다. 검찰은 이를 모른 채 법무부로부터 출국정지 기간이 만료됐다는 연락을 받은 뒤 같은 달 26일 기한연장을 신청하기도 했다.
이에 유족들은 검찰의 수사 잘못으로 '범인이 없는 사건'이 되고 패터슨의 출국을 방치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06년 5월 검찰과 법무부의 잘못을 인정해 유족들에게 34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또 패터슨이 미국으로 달아난 뒤부터 2009년 11월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때까지 10년간 도대체 뭘 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2009년은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을 때였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시기상 영화가 나온 뒤 인도 요청을 한 것은 맞지만, 2002년 10월 패터슨을 기소중지하고, 2005년부터 미국과 형사사법 공조를 취하면서 인터폴에 적색 수배령을 내리는 등 필요한 절차는 밟아왔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