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77년 납치했다가 1994년 사망했다고 밝힌 일본 여성 요코다 메구미(피랍 당시 13세)씨가 북한의 주장보다 최소한 10년 더 살아 있었다는 증언이 또 나왔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9일 탈북자 이영수(가명·46)씨로부터 "2004년 북한이 사망했다며 유골을 보낸 메구미가 사실은 당시까지 살아있었다"는 내용의 녹취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이씨는 "2004년 말~2005년 초 북한 대동강변 지하 식당에서 일본인 납치를 담당했던 북한 노동당 일본담당 연락지도원으로부터 들었다"며 "'메구미가 살아있는데도 알아선 안 될 것을 너무 많이 알아서 (일본으로)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고 유골은 가짜를 보냈다. 메구미 외에도 자기가 알고 있는 납북된 일본 여성이 4명은 더 있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돼 있기에 이씨 발언의 진위를 확인해 봐야 한다"고 했다.
◆메구미 사건이란
요코다 메구미 사건은 귀순한 북한 공작원 안명진씨가 1996년 "북한에서 납치된 일본 소녀를 봤다"고 증언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북·일 간 최대 현안이 됐다. 특히 메구미가 1978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북한 공작원에 의해서 납북된 김영남(51)의 전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북한은 일본 정부의 납치 조사단이 방북한 2002년 9월 "메구미가 1986년 8월 김영남과 결혼한 뒤 이듬해 딸 '혜경'(나중에 은경으로 밝혀짐)을 낳고 살다가 1993년 3월(나중에 1994년 4월로 정정) 우울증으로 입원해 있던 평양 시내의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11월에는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이라는 뼛가루를 건넸다.
2006년 6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에는 전 남편 김영남이 직접 나와 "(메구미는) 결혼 전부터 병적인 현상이 있었는데 출산 후 더 악화됐고 우울증에 정신 이상 증세까지 나타나 결국 1994년 4월 13일 정신병원에서 자살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메구미가 살아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북한이 메구미의 사망 연도를 1993년에서 1994년으로 수정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또한 2004년 12월 일본 정부가 북한이 건넨 메구미의 유해에 대해 "유전자 감식 결과 메구미의 유해가 아니다"란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통영의 딸, 독일댁으로 불려"
한편 이씨는 '통영의 딸' 신숙자씨 모녀가 1995년 요덕수용소의 혁명화구역에서 종신구역으로 옮겼으며 2003년 9월까지는 수용소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그는 "거의 정신이 나가다시피 한 신숙자씨는 그곳에서 '독일댁'으로 불렸다"며 "큰딸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고 작은딸은 조잘조잘 댔다. 수용소장이 '독일댁은 죽이면 안 되니까 나무 좀 해다 주라'고 해서 한 달에 한두 번씩 나무 땔감을 해다 주었다"고 증언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독일에 살던 신씨는 1985년 작곡가 윤이상 등의 월북 권유를 받은 남편 오씨를 따라 입북했지만 1986년 오씨가 북한을 탈출함에 따라 두 딸과 함께 요덕수용소에 수용됐다. 최근에는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리의 통제구역에 억류돼 있다고 납북자 단체 등이 주장했다.
이씨는 또 6·25 때 중대장을 하다 포로가 된 육군대위 박재수씨가 요덕수용소에 수용돼 있다가 1991~1992년 수용소를 나왔다고 했다. 그는 "박재수 대위는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대남방송 등을 거부하다가 들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