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애 음악칼럼니스트

일교차가 큰 탓에 찬바람 불어야 눈에 띌 듯한 두툼한 목도리에 멋스러운 트렌치코트 차림이 아침저녁으로 제법 보인다. 맘씨 좋은 엄마 품같이 넉넉하고 풍성한 가을 햇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챙겨 입은 사람들마저 있으니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며칠 전 국내 최정상급 피아니스트가 오랜만에 대구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지금까지 그가 한 연주로는 주로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고전주의 작품들만 감상했었는데, 그날은 가을 분위기 나는 쇼팽과 슈베르트의 낭만주의 레퍼토리로 꾸며졌다. 깊어가는 가을밤 로맨틱한 정서에 흠뻑 젖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좋은 음악회나 공연을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가 요즘은 정말 무얼 보러 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 오페라다 뮤지컬이다 해서 장기간 축제를 하는 경우도 있고, 리사이틀(독주회), 교향악 콘서트, 실내악 연주회 등등 올가을엔 유난히 연주회나 공연이 많다. 꼭 보고 싶고, 듣고 싶은 프로그램도 예년에 비해 넘친다.

낭만의 계절에는 뭐니 뭐니 해도 가을밤 심금을 울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이 제격이다. 이태백이 달빛에 취해 술잔을 기울이듯 말이다. 바로크 시대에서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 피아노 작품을 한 곡도 쓰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가을밤에 어울리는 피아노 레퍼토리하면 쇼팽(1810~1849년)과 리스트(1811∼1886년)가 아니겠는가.

지난 2010년은 쇼팽이 태어난 지 200주년 되던 해였고, 올해는 리스트가 태어난 지 200주년 되는 해다. 쇼팽은 10월 17일에 세상을 떠났고, 리스트는 10월 22일 태어났다. 쇼팽은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는 헝가리의 라이딩 근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혈통에서부터 성장과정, 피아노와 음악 교육 방식이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은 19세기 초반 천재적인 혹은 초인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위대한 작곡가라는 평가를 함께 받으며 우정과 경쟁을 나눴던 사이다.

이 두 작곡가가 남긴 녹턴(Nocturne), 발라드(Ballade), 즉흥곡(Impromptu), 폴로네이즈(Polonaise)와 다양한 제목의 표제적 소품(Character piece), 그리고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에게 도전과 시험이 되는 연습곡(�Btude)과 협주곡(Concert), 소나타(Sonata) 등은 가을밤 온 세상 여기저기서 연주되고 있다.

어쩌면 두 사람에게 가을은 뗄 수 없는 운명의 계절이 아니었을까. 피아노가 오늘날 우리 거실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기가 되는 데 제일 큰 공을 세운 두 사람,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쇼팽과 리스트는 가을이면 피아노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어놓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