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1960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3남매의 맏이인 박 후보는 "부모님이 모두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세 살 때쯤 어머니가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따라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학창 시절 놀기도 많이 했고 공부도 잘 못했지만 결국 역전 드라마를 쓰고 있는 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생님께 채점 잘못 따지던 초등학생
박 후보는 서울 운화초등학교(현 예일초등학교)를 다녔다. 4학년 때 담임이었던 고 최상순 화백은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 홈페이지에 박영선 의원을 소개하는 글을 썼다. 최 화백은 "어느 날 채점한 시험지를 나눠 줬더니 영선이가 채점이 틀렸다고 정정을 요구했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게 보이지 않는데도 참고 서적을 가지고 와서 여기엔 이렇고 저 책엔 이러니 정답으로 해야 된다며 울며 항의했다"고 했다.
여중생(덕성여중) 시절 박 후보는 친구를 따라 가수 이장희가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애청자 엽서 시상식에 갔다. 방송국과 첫 인연이었다. 박 후보는 "거기서 이장희씨를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그때부터 기타 치고 노래 부르러 다니며 옆길로 샜다"고 했다. 수도여고 시절에는 방송반을 했다. 박 후보는 "선생님이 방송반 하면 좋은 대학 못 간다고 했는데, 실제 원하는 대학엔 못 갔다"고 했다. 경희대 지리학과에 입학한 박 후보는 1979년 8월 당시 TBC가 주최한 전국대학생 가요경연대회에 출전했다. 남녀 각각 2명으로 구성된 '퐁퐁4중창단'을 만들어 본선까지 올랐지만 상을 받지는 못했다. 다른 여성 멤버는 KBS 윤영미 아나운서였다. 박 후보는 "당시 무명 가수이던 강인원씨가 '이 한밤을'이란 곡을 만들어 줘 출전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대학 학비 안 대줘… 이 악물고 공부해"
박 후보는 대학 시절이 "내가 겪은 가장 큰 좌절의 시기였다"고 했다. 집(연희동)에서 가까운 연세대에 들어가길 원했던 박 후보의 아버지는 대학 입학금만 내주고 등록금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 후보는 "당시 집에서 학교까지 134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아버지는 '좋다는 학교 다 지나 그 구석 가서 뭐하냐'고 했다"고 회상했다. 기자가 꿈이었던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고 한다. 1981년 KBS에 입사, 춘천 근무 발령을 받았다. 아버지가 '다 큰 딸이 집 나가 살면 안 된다'고 해 새벽 4시에 일어나 춘천까지 출퇴근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MBC로 옮겼다. MBC 선배인 삼성 미래전략실 이인용 부사장은 "박영선은 타고난 방송인이었지만 누구 못지않은 '노력파'였다"고 했다. 경제부 기자 시절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청운동 집 앞에 새벽마다 찾아가 인터뷰를 결국 성공시키기도 했다.
◆'마음의 빚 갚으려' 정치 입문
박 후보는 이후 LA 특파원, 경제부장,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 등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17대 총선에서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나는 완고한 아버지 때문에 민주화운동을 못 했는데 열린우리당에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이 많아 '빚 갚으러 가자'는 마음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했다. 박 후보는 2004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 원내 대변인, 의장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그는 2007년 대선 당시 대선기획단 지원실장을 맡아 BBK 관련 의혹 제기에 앞장섰다. 이 때문에 가족이 지금까지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됐다고 박 후보는 주장한다. "남편(이원조 국제변호사)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다녔는데, 검찰이 'BBK 기획입국설'에 관여했다고 남편을 하도 힘들게 하니까, 남편이 스스로 외국에 나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LA 특파원 시절(1996~ 1997년) 미국 교포인 이씨를 만나 재혼했다. 첫 남편은 외교관 출신이었는데 1년도 안 돼 헤어졌다.
박 후보는 18대 국회 들어서 김태호 총리,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낙마 등을 주도하면서 '여전사' 내지는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박 후보는 "서울 시정(市政)의 잘못을 시장이 바로잡으려면 강단 있고 야무지면서 동시에 고단한 서울 시민의 삶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한다"며 "서민을 위한 따뜻한 정책은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 내가 해왔던 일"이라고 했다.
◆일본에 고가 아파트 보유?
남편 이씨와 아들은 2008년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껏 살고 있다. 박 후보는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데를 찾다가 그리로 갔다"고 했다. 이씨는 떠나면서 "당신이 정치를 언제까지 할지 기약이 있는 게 아닌데, 나도 먹고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11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이 때문에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을 외쳐온 민주당 후보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후보는 "일본은 은행 이자는 싸고 집 월세는 너무 비싸다"며 "대출금으로 집을 산 뒤 원리금을 갚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박 후보 부부의 재산은 이 아파트와 서울 연희동 단독주택 등을 포함, 27억7543만원(국회 신고 기준)이다.
◆아들 3200만원짜리 외국인학교 취학 논란
박 후보는 이씨와 사이에 아들(13) 하나를 두고 있다. 아들 출생 때 이씨가 미국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아들도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씨는 최근 미국 국적을 포기했지만 아들은 아직 국적 포기 여부를 결정해야 할 18세에 이르지 않아 이중국적 상태라고 박 후보 측은 밝혔다.
아들이 한국에 있을 때 1년에 3200만원이 들어가는 외국인학교를 다녔다는 논란에 대해 박 후보는 "등록금이 좀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대체로 맞는다"며 "국민 정서가 그런 지적을 한다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남편)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렇게 자랐기 때문에…"라고 했다. 박 후보는 아들을 지난 8월 휴가 때 보고 못 봤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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