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노인들이 있는 가정은 에어컨을 틀어야 합니다."
지난 8월 중순 일본의 TV 방송이 노인이 있는 가정에 에어컨 가동을 촉구하는 캠페인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일본은 3·11 대지진 여파로 심각한 전력난으로 국가적인 위기를 겪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TV에서 '에어컨 가동'을 촉구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지독한 절전' 때문이었다.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냉방장치를 전혀 가동하지 않다가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노인들이 속출했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한 노인은 "냉방장치를 켜지 않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보니…"라고 말했다.
일본은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로 인해 전국의 원전 54기 가운데 40여기가 가동 중단된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대정전 가능성이 컸던 도쿄권은 전기가 오히려 남아돌아 다른 지역에 전력을 공급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권에 대해 전년 대비 15% 절전을 목표로 했지만 기업과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 목표를 초과해 21% 절전을 달성했다. 대기업과 공장들은 평일에 쉬는 대신 전기 수요가 적은 주말에 근무하는 순환근무제를 도입했다. 전기 사용량이 많은 오후 2시를 전후한 시간엔 복사기조차 쓰지 않았다.
정전 위기를 넘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일반 가정의 자발적인 참여를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가정은 오후 2시 전력 피크 때 전력 사용량의 30%를 차지한다. 대지진 이후 도쿄 주택가에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창문에 '고야'라는 덩굴 식물이 속속 심어졌다. 고야는 두세 달이면 2.5m까지 자라나 실내 온도를 낮추는 '녹색 커튼' 역할을 한다. 대지진 이전에 전체 전구 판매량의 10%에 불과했던 LED 전구가 50%에 육박할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백열전구보다 10배 정도 비싸지만 전기 사용량이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이제 겨울 전력난에 대비하고 있다. '유단보'나 '고타쓰'와 같은 절전형 난방제품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다. 유단보는 뜨거운 물을 넣은 일종의 보온병. 겨울에도 잠을 잘 때 난방장치를 가동하지 않고 두꺼운 이불 속에 유단보를 넣고 자기 위해서다.
고타쓰는 밥상·식탁 등에 전기난로와 이불을 붙여서 만든 난방장치이다. 옷처럼 만든 담요인 '입는 담요'도 인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