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명주 기자] 배우 전도연은 완벽주의자다. 직업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고집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완벽을 추구하는 편이다. 스스로를 가리켜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라 말할 정도다.

이런 이유 탓일까. 처음 그와 마주하는 사람들은 무척 어려워하며 긴장하곤 한다. '까칠한 여배우님'으로 색안경을 끼고 본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이에 대해 질문하자 "어우, 나 그런 사람 아니야" 하며 펄쩍 뛰었다. 특유의 하이톤 보이스로 "억울하다" 항변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선 아이 같은 순수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카운트다운' 위해 길었던 머리도 '싹둑'

올 하반기 극장가는 수많은 한국 영화들이 비슷한 시기 개봉, 경쟁을 펼치는 격전장이 될 전망이다. 지난 22일 개봉 이래 박스오피스 1위를 점하고 있는 '도가니'를 비롯해 전도연 주연의 '카운트다운', 하정우-박희순-장혁 세 남자배우의 연기 열전 '의뢰인'이 9월 말에 개봉을 앞두고 있고 '투혼', '오직 그대만', '완득이', '티끌 모아 로맨스', '오늘', 'Mr. 아이돌' 등이 대거 개봉 예정이다.

"이렇게 한국 영화들과 같이 개봉하는 건 처음이에요. 라이벌 될 만한 작품들이 붙는 게 처음이라 긴장되네요. 작품들이 다 좋아서 우리 것이 더 잘돼야 되는데 했는데요. 선택은 관객의 몫이니까 기다려봐야죠. 꼭 한 영화만 보지 않으니 셋 다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그가 주연을 맡은 신작 '카운트다운'은 주어진 시간 10일 내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남자 태건호(정재영)가 미모의 사기전과범 차하연(전도연)과 벌이는 위험한 거래를 그린 액션 드라마다. 전도연은 극중 정재계와 법조계 유력인사를 동원해 30분에 170억을 모으는 미모의 사기전과범 역을 맡아 국내 영화사상 가장 치명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신했다.

"포인트는 미모의 사기 전과범이에요.(웃음) 여자 차하연에 중심을 뒀어요. 다른 것보다 외적인 부분 준비 많았어요. 카멜레온 같은 여자라서 화려한 의상과 메이크업 등에 신경 썼습니다."

이번 영화를 위해 전도연은 데뷔 이래 처음으로 짧은 커트 머리를 시도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벗고 냉혈한 사기꾼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좀 다르게 보이고 싶었어요. 긴 머리로는 한계가 있어서 잘라 보자 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머리는 중학교 때 이후 처음이에요. 한 삼일 정도는 죽는 줄 알았어요. 머리 막 자르면 드라이를 해주시니 '괜찮네' 했는데 머리를 감았더니 다른 헤어스타일이 되는 거예요. 받아들이는데 삼사일 걸린 것 같아요. 나이 있는데 뭘 기르나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지금 머리 좋아요."

'최선의 선택' 하는 건데 사람들은 '어렵대'

촬영장에서 그는 '여배우님'으로 통한다. 일에 있어 엄격하기로 소문난 만큼 전도연을 처음 보는 스태프들은 꽤나 긴장한다는 후문. "전도연이 온다"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일사 분란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릴 정도다. 촬영할 때 그 누구보다 까다로운 배우로 알려졌지만 그건 잘못 알려진 '루머'일 뿐이라는 게 전도연의 설명이다. 그는 "오히려 작품을 할 때가 가장 여러 강박에서 자유로운 시간"이라 입을 뗐다.

"사람들이 진짜 저를 무서워해요. 물론 시간 개념이 되게 철저해서 일할 때는 누군가의 실수로 지연되는 게 싫긴 하죠. 지내보면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 하는데 전 무섭게 굴지는 않거든요. 스태프들과도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스태프들 어려워하면 긴장감 풀어주기 위해 인사 밝게 하고 그랬는데 오히려 역반응이 일더라고요. 그래서 친해지기 위해 노력 한다든지 하는 거 안 해요. 무엇보다 연기 할 때가 가장 모든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냥 전도연 연기 잘하는 거 모든 사람이 아는데 나까지 '더 잘해야 돼' 하기 싫거든요. 일할 때가 가장 자유로워요."

전도연을 설명하는 수식어들은 무척이나 많다. 그 중 '칸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지난 2007년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후 자연스레 붙여졌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의 수상 쾌거 때문인지 그의 선택은 늘 '너무 어렵지 않나' 하는 오해를 부르기 일쑤다.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건 대중들이 많이 봐야 하는 영화인가 아닌가 여부에요. 대중 상관없이 작품성만 보지 않는 편이죠. 근데 사람들은 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더라고요. '뭐가 잘못됐을까, 뭐가 문제일까' 생각했어요. '카운트다운'도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더군요. '칸 영화제' 때문에 날 어렵게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좀 억울해요. 그래서 '카운트다운'이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전도연은 다채롭다. 자유자재로 변신할 줄 안다. 어떤 옷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국내 몇 안 되는 배우다. 이제껏 그가 연기한 인물들을 살펴보면 뭐 하나 중복되는 캐릭터가 없을 정도로 나이도, 성격도, 주어진 상황까지도 무척 다양하다. 조직폭력배를 사랑한 비운의 여인(영화 '약속')과 늦깎이 초등학생(영화 '내 마음의 풍금'), 바람난 유부녀(영화 '해피엔드')를 비롯해 에이즈 걸린 집창촌 여성 등 영화를 통해 독특하지만 우리 주변에 있음직한 이들의 인생을 살았다.

"꼭 도전하고 싶은 건 없어요. 어떤 역할 들어와도 잘할 것 같아요. 예전엔 '멜로의 여왕'이라든가 이런 걸 했었지만 새로운 것이 놓여 졌을 땐 당혹스러움이나 그걸 극복하기 위해 하는 게 좋아요. 이전에 항구나 배에서 찍는 신 등을 한 적이 없었어요. '카운트다운'에서 한 달 찍었는데 내가 뭘 찍는지 몰라서 공황 상태였어요. 되게 당황스러웠어요. 눈앞에서 이러고 있는데 차하연은 뭘 해야 하나, 물에 빠지는 건 어떻게 하나 했어요. 다행히 물에 대한 두려움은 영화 '인어공주' 때 많이 있어봐서요. 물이 무섭진 않더라고요."

완벽주의자로 사는 것...정말 '피곤해'

모든 일에 있어 완벽을 추구하는 전도연은 늘 그렇게 사는 것이 '되게 피곤한 일'이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하기 보단 자신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헤쳐 나가고 있다.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

"생활에서도 그래요. 그래서 되게 피곤하죠. 쉽지 않은 선택하고 쉽지 않게 살고 있어요. 남편은 그런 저를 버거워 해요. 손 놔도 잘 돌아가는데 왜 네가 하려고 하냐 묻죠. 근데 그것도 성격인 것 같아요. 뭔가를 포기하려면 크게 마음먹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해요. 그래서 나 자신을 포기했어요. 힘들어도 이건 나고 내 스타일이라 인정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놓게 됐어요. 가사일도 그렇고 아이에 관한 부분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요. 나이 한 살씩 먹고 나니 팽팽함이 덜해지는 것 같아요. 굳이 노력 안 해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변하겠구나 생각해요."

'엄마' 전도연이 궁금했다. 그는 지난 2009년 1월 첫 딸을 낳고 결혼 1년 10개월 만에 한 아이를 둔 어머니가 됐다. 프라이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딸에 대해 물어보자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되게 노력하는 엄마에요. 엄마 되기 전에는 그냥 당연히 우리 엄마를 생각했어요. 우리 엄마 같은 모성애 가득한 모습 말이에요. 근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모성애 있긴 하지만 나머지는 노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당황스러웠어요.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좋은 엄마가 돼주고 싶어요. 아이가 즐길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 호기심 보이는 건 같이 하려 해요. 처음에 영화 때문에 머리 자른다고 했더니 아이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막상 잘랐더니 언니 같다고 했어요. 재밌는 대답인 거 같아요."

앞서 지난 20일 열린 '카운트다운' 기자간담회에서 전도연은 자신의 딸에게 '아이돌을 권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바 있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 최고의 여배우가 된 그에게 나온 대답이 의외여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만약 하고 싶다 한다면 어쩌겠어요. 제가 볼 때는 아이돌 너무 갖춰 있는 것 같아요. 제재 많이 당하고요. 그래서 (내 딸은) 자유롭게 많은 것들을 보고 자랐으면 좋겠어요. 얻는 것 많지만 잃는 것도 많거든요. 배우도 간절히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더 많은 것들을 즐기고 보고 선택했으면 해요."

"지나고 보면 나도 많이 못했어요. 19살 데뷔했는데 일하는 시간 많아지니까 대학에서도 동아리 활동 못해 봤고 친구도 못 사겨 봤고 별로 흥미롭지 않았죠. 일하는 사람하고만 만나니 흥미롭지 않았어요. 얻은 것도 크지만 놓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한편 전도연-정재영 주연의 '카운트다운'은 29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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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