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옷차림의 그가 남달라 보였던 것은 밝은 하늘색 스니커즈 때문이었다. 흰 셔츠, 검은 바지에 구두 대신 경쾌한 스니커즈를 택한 이 남자는 스페인의 세계적 캐주얼 신발 브랜드 캠퍼(camper)의 로렌조 플룩사(64) 회장. 캠퍼는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으로 전 세계에 마니아를 거느린 브랜드다. 최근 아시아 시장 시찰차 한국을 찾은 플룩사 회장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캠퍼 매장에서 만났다.

플룩사 회장은 할아버지의 신발 가게에서 시작된 가업(家業)을 물려받은 3대 경영자다. 1975년 캠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 70여 개국에 매장을 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플룩사 회장은 1980년 한국을 처음 찾았던 때의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그는 "출발한 지 5년쯤 되던 캠퍼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품질 좋은 신발을 만드는 생산지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주목했던 것은 2대 경영자였던 아버지가 '의류·신발 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로 한국을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서울 중심지인 명동 같은 곳에서도 캐주얼 신발을 신은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구두 아니면 운동화 차림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캐주얼 브랜드가 다양해진 점이 눈에 띈다"며 "평범하고 무난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던 30년 전보다 재기 발랄한 디자인이 늘어났다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캠퍼 매장에서 신제품 신발을 들어 보이고 있는 로렌조 플룩사 회장.

플룩사 회장은 "지금 한국은 트렌드가 가장 빨리 변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이 이제는 세계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캠퍼가 지난해 10월 신사동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연 것도 한국의 이런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캠퍼는 신발과 무관해 보이는 호텔·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기도 하다. 고객 대여용 자전거를 로비 천장에 매다는 등 기발한 아이디어와 세련된 실내 디자인으로 주목받는 곳이다. 그는 "(호텔·레스토랑은) 디자인의 즐거움을 소비자와 나누는 방법"이라며 "우리는 신발을 팔기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예전보다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브랜드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 신발의 현주소다. 이에 대해 플룩사 회장은 "눈앞의 매출에 연연하지 말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라"고 조언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소비자들이 브랜드의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는 "캠퍼의 경우 이 키워드는 디자인"이라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고, 손님이 들어서는 순간 기분 좋아지도록 매장 디자인에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고 했다. 그는 "캠퍼는 디자인 혁신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가치를 세우고 지켜가는 브랜드를 소비자는 신뢰하기 마련"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