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가와 유키코 日 와세다대 교수

어느 날, 건강한 대학생 조카가 갑자기 쓰러져 생사(生死)의 경계선을 오간 일이 있었다. 치료비가 수백만엔에 달할 것 같았지만, 가족들이 병원에 실제로 지급한 의료비는 수만엔이었다. 의료비 부담이 일정액 이상을 초과할 때 그 초과액을 지원하는 일본의 '고액요양비 제도'에 그때처럼 고마움을 느낀 일이 없다.

의료·복지의 혜택을 넓히자는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복지를 삭감하자"고 주장해 냉혈한의 이미지를 떠안으려는 정치가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작년 일본의 사회보장비는 27조3000억엔으로까지 늘어나 일반 세출(歲出)의 30%까지 부풀었다. 여기에 후생노동성이 별도 관리하는 복지 관련 특별회계 84조3000억엔까지 합하면, 일본의 사회보장 관련 세출은 111조6000억엔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노인들의 복지와 의료를 위해 지출되는 금액은 특별회계의 연금 급부 65조엔을 포함해 일본 전체 사회보장 지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에서는 이제 곧 두꺼운 인구층을 형성하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1947∼1951년 출생)가 연금과 노인의료의 수급자로 본격 등장한다. 여기에 의료보험료를 지급할 수 없는 빈곤층의 증대, 연금제도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보고 연금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증가로 일본 복지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제도 개혁, 무상 학교급식, 반값 대학등록금이 화제인 듯하다. 이제까지 지역개발이나 신(新)산업 육성 등 성장전략 일변도로 흘러가던 한국도 드디어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사회를 향해 돌진하는 한국에서 복지제도가 논의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에는 부동산에 가계를 의지하는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부동산의 가격 상승 시대가 곧 끝날 것을 대비해 다가올 고령사회의 복지를 설계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과제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복지 차원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가운데 압도적으로 무거운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정치가들의 복지 포퓰리즘 경쟁은 멈출 수 없다. 이 경쟁이 이대로 진행되면 한국의 앞길엔 1980년대 유럽이나 앞으로 일본 같은 복지 파탄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북한이라는 특별한 불확실성까지 안고 있는 한국이야말로 재정 여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현실적으로 유럽과 일본처럼 복지 파탄을 용서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한국이 복지 파탄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이미 거쳐 간 실패를 회피하는 '후발(後發)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세입(歲入)을 늘리는 성장전략을 균형 있게 추진하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 한국이 누릴 수 있는 '후발의 이익' 중 하나는 주민등록제도와 정비된 IT(정보·통신) 인프라로 복지에서의 정보공유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때 일본이 겪었던 의료보수 명세서의 전산화조차 기득권자들의 반대로 지연되는 코스트를 한국은 아주 적게 지불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지방 소규모 병원의 경영을 압박한다는 이유로 원격진료 시스템의 확대를 지연시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고도의료에 전념하는 대형병원, 지역의 거점병원, 주택지의 홈닥터를 원활히 연결하는 의료제휴와 전문적인 병원경영인 육성 등 선진국의 경험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재정 확충을 위한 성장전략에서 한국이 주목하는 것은 주로 치료를 목적으로 한 의료관광이나 바이오 기술이다. 하지만 전기·전자나 자동차 등 자유무역 시스템을 향유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의료서비스는 의료보험과 의사의 과실(過失) 책임 등 국가별 제도의 벽이 존재한다. 또 바이오 기술 개발은 대기업의 대량생산 방식으로 발전해온 한국의 산업 시스템에 친숙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한국엔 금융·경영·지적재산권 등 여러 각도에서 바이오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보다, 국민 생활에 질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산업, 현재 한국이 가지고 있는 기술기반과 최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산업을 선별하고 이를 착실하게 육성할 수 있는 적절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 정부의 역할일 것이다. 복지는 완전한 산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관여가 불가결하다.

복지 포퓰리즘의 파탄 위험성을 피하는 길은 이처럼 복지서비스의 낭비 요소를 배제하고 효율을 극대화해 실체가 있는 산업으로 키우는 방법인 듯하다. 지속성이 없는 비효율적 복지제도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와 함께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국민이 일찍 깨닫는 것도 한국이 누릴 수 있는 '후발의 이익'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