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한 회원 49명의 모임이다. 한국에서 유일한 이 고액 기부자 모임은 2008년 출범 이래 3년 동안 모두 87억5500만원을 내놓았다. 이 회원 모두를 조선일보가 일일이 취재해봤더니 '부호'라고 할 만한 이는 거의 없었다. 대다수가 중소기업을 꾸리거나 전문직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은 '작은 부자'였다.
회원 중엔 특전사·해병대·학군단처럼 힘들고 긴 군복무를 마친 사람이 많았다. 특별히 학력이 높지도 않아 40%가 고졸·중졸 또는 무학(無學)이었다. 점심으로 찌개·국수·백반(41.7%)을 들고, 술은 소주(34.9%), 안주는 과일과 삼겹살을 즐긴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런 이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힘들게 모은 돈을 아름답게 나눔으로써 세상도 아름답게 바뀌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들은 한꺼번에 수천억원을 내놓는 재벌이 아니다. 평생 어렵게 살며 오로지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수백억원을 기부하는 휴먼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을 어렵게 살았지만(46.5%) 커서는 부모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72.7%) 자수성가형 부자들이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라가 크니까 나도 큰 것"이라는 겸손과 "우리 사회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현실 인식을 갖고 있다.
이들도 처음 기부할 때는 대부분 1만~수십만원을 냈었다. 그로부터 평균 18년쯤이 흐른 뒤에야 1억원이 넘는 돈을 내놓게 됐다. 재산을 모으고 기부 철학을 다지는 데 짧지 않은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들은 이제 부(富)를 가졌다는 것을 넘어서서, 부의 진짜 가치를 알게 된 사람들이다.
아너소사이어티는 회원 6명으로 출범했고 3년 만인 올해 49명으로 여덟 배 커졌다. 회원이 2만6890명에 이르는 미국 고액기부자 모임 '토크빌 소사이어티'도 1984년 출발했을 때는 20명에 불과했다.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제 속도로 진화하고, 부자들에서부터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번진다면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도 머지않아 수백, 수천 명으로 불어날 것이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들은 나눔과 교육과 일자리와 건강한 삶에 대한 안목을 갖고 실천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단순한 기부자(donor)를 넘어 우리 사회의 명예(honor)로 일컬을 만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에 새로운 유형의 상류층 한국인이 출현하고 있음을 알린다. 아너소사이어티 사람들은 미래 한국인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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