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주 문화부장

20대 때 일했던 직장에서의 일이다. 전화가 왔다. "부장 바꿔." 당시로선 쳐다보기도 어려운 선배를 이렇게 찾으니 참을 수 없었다. "누구신데 전화를 이렇게 하십니까?" 저편에서 말했다. "허허, 할 만하니까 하지." 알고 보니 높은 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반말은 권력이다.

반말이 권력일진대, 권력자로 가득한 국회에서 반말이 빈발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올해는 '반말 스타'로 정몽준 의원이 떠올랐다. 외교통상부 국감에서 장관에게 "그게 상식에 맞는 얘기야?" "초등학생이라도 이건 상식에 안 맞는 것 아니겠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등 초지일관 반말을 했다. 언격(言格)이 낮아 보인다는 것도 문제지만, 화를 내는 이유도 석연치 않았다. 내년 열릴 핵안보정상회담과 국회의원 선거유세 기간이 겹친다는 것에 국민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다. 국익에 손해를 끼칠 대단한 과오가 있는 게 아니라, 장사(유세)하는데 맥을 끊는다는 얘기였으니까 말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 의원은 "친한 관계라 그랬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국회의원이 '민간인'을 상대로 윽박지른 것은 더 민망했다.

[최종원]

의원은 가수협회장을 대신해 국감에 배석한 가수

[유열]

씨에게 "지금 누가 박수 쳤어? 박수 친 사람 누구야?"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 "왜 장차관에게 '님'자를 붙이느냐"는 동료의원의 지적을 받은 전재희 문방위원장이 "상호존중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하자 유씨가 박수를 쳤던 것이다. 만일 최 의원이 전직인 연극배우였을 때 국회의원에게 이런 꼴을 당했다면, 험한 말 분야에서는 결코 초선(初選)답지 않은 그가 유씨처럼 "죄송하다. 처음이라 그랬다" 했을 것 같지는 않다. "의원이 그렇게 잘났냐, 딴따라라고 이런 대접 해도 되나, 예술인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 정도는 나오지 않았을까.

국민을 대신해 국정을 감시하는 것이 국정감사다. 정보접근권이 대략 무한대에 달하는 의원 하나하나가 정부의 실정(失政)을 탐구, '팩트'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의원도 조금은 있지만 많은 국감 질의는 언론 기사와 정부 자료를 대충 엮은 것이다. 이 와중에 언론사 기자들의 이목을 끌어 '한 건(件)' 올리려면 소리 지르기, 자료 집어던지기 같은 '퍼포먼스(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정성보다는 언성이 더 먹힌다는 계산인 거다.

하지만 어떤 의원도 유세철에는 그런 행태를 보이지 않는다. 평소엔 잘 입지도 않던 점퍼를 꺼내 입고,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시장이나 목욕탕으로 달려가 악수하며 이마를 배꼽에 맞추는 기예에 가까운 '비굴 악수'를 해댄다. 인간의 진화 단계에 빗댄 국회의원 자세 패러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돈 것도 이런 이유다. 사실 반말보다 더 음험한 게 갑작스런 존댓말이다. 평소 반말하던 상사가 "김 과장, 지금 바빠요? 잠깐 볼까요" 이렇게 말을 건네온다면, 그건 좋지 않을 뉴스일 확률이 훨씬 높다.

진심이 받쳐주지 않는 반짝 예의, 급작스런 비굴은 오만한 권력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도 유권자는 현혹된다. 이게 문제다. 유권자도 이젠 자존심 좀 챙겨야 한다. 대단하신 의원님들이 자기 앞에서 한 번 꿇어주는 게 무슨 가문의 영광인가. 국회의원 후보가 등 밀어주면, 때가 더 굵게 나온다던가. 비굴과 오만을 오가는 의원들을 눈여겨 봐두자. 유세철에 그들이 나타나 비굴악수를 청하면, 이렇게 말해주자. "누구신데 저한테 악수를 청하시니?"

[키워드]

['반말 스타' 정몽준]

[최종원 손가락질]

[선거철 '굽신' 모습들]

["그를 보수로 내몬 건 게으른 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