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죽어버려야겠다 마음을 먹고 창원에 내려갔어요. 10년간 도박에 빠져 전 재산 날리고, 중학교 다니는 딸내미가 전화를 했기에 받았더니 '아빠 빨리 와' 하면서 엉엉 우는데…."
점퍼 차림의 50대 남성 도박 중독자가 이렇게 말하자 주변이 침묵에 빠졌다.
옆에서 몇 사람이 공감한다는 듯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도박 빚에 몰려 2년간 잠수를 탔는데(잠적을 했는데) 그사이 어머니가 10년은 더 늙으셨더라"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 15일 저녁 경기도 수원시 경기 도박중독 예방치유센터의 사랑방.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성 10여명이 둘러앉았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장도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투, 카드 도박에서 경마, 경정(보트 레이스), 인터넷 도박 사이트 중독까지 도박에 미쳐 가족과 직장을 잃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예방치유센터는 정신병동 같은 곳은 아니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상담도 받고 처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서 도박으로 무너진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중 가장 젊은 이모(28·회사원)씨도 도박 경력 11년에 달하는 '베테랑 도박꾼'이었다.
고등학생 때 배운 화투 도박이 이씨의 인생을 저당잡았다. 돈 따는 재미를 알아버린 이씨는 군 제대 이후 인터넷 도박에 눈을 뜨면서 본격적으로 도박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인터넷 포커를 친 지 1년 만에 빚 3000만원을 지게 되자 회사 신용대출, 카드깡, 사채 등을 동원해 빚을 돌려막았다. 나중엔 회사 공금에도 손을 댔다. 5년간 도박을 한 이씨에게 남은 것은 빚 1억원뿐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남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굉장히 두려웠다"며 "하지만 일단 센터에서 다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고 말했다. 도박을 끊은 지 5개월째라는 김모(44·택시기사)씨는 24년간 경마, 화투, 성인 오락 등 온갖 도박에 빠져 살아온 '중증 중독자'였다.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은 채 대출, 카드깡, 도박장 꽁지(사채)까지 빌렸다. 사회 초년병이던 동생의 월급을 훔쳐 빚을 갚은 적도 있었고, 2년간은 세상을 등지고 살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는 지난 5월, 2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자기 손을 붙잡고 우는 어머니를 보고 도박을 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아직도 도박의 유혹에 시달린다. 김씨는 "가끔 손님을 태우겠다는 핑계로 나도 모르게 경마장 주변으로 가서 1시간씩 돌고 있더라"고 했다. "그럴 때면 '들어가서 딱 한 경기만 보고 나올까' 하는 유혹과 계속 싸워야 한다"고 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도박 중독자는 약 230만명에 이른다.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가 70만명 선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도박중독 예방치유센터는 서울, 수원, 부산 세 군데에 불과해 턱없이 부족하다.
경기 도박중독 예방치유센터 전영민 센터장은 "인터넷 등으로 새로운 도박이 매일같이 생겨나는 세상이라 치유센터 세 곳으로는 역부족"이라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기업 등에서도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키워드]
|
[도박중독 증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