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요즘 우리의 에너지 수급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 전력 수급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났고, 정유 산업도 정부의 맹목적이고 무차별적인 압박에 신음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 강국의 꿈을 고집하기도 어렵게 됐지만 대안을 찾는 일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자원 외교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알고 있던 이라크의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도 4000억원이 넘는 엄청난 투자금만 날리고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고 한다. 국제사회에까지 요란하게 자랑하던 저탄소 녹색성장 열기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신재생 에너지 개발 노력도 시들해졌고, 화려했던 녹색 에너지 수급 계획은 오래전에 우리 기억에서 사라졌다. 무능하고 감정적인 지식경제부에서는 어떤 희망도 찾을 수가 없다.

사회가 협조적인 것도 아니다. 전국적으로 212만 가구에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비상사태를 겪은 다음 날에도 냉방용 전력 수요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전력 소비를 자제해 달라는 정부의 절박한 요청에 귀를 기울인 국민은 없었던 셈이다. 겉으로는 기름값이 비싸다고 야단들이지만 넘쳐나는 자동차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방방곡곡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유리 건물 문제도 심각하다.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밀폐된 온실과 다를 것 없는 유리 건물은 에너지 먹는 하마다. 여름철 냉방과 겨울철 난방 모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정부가 요란하게 제시했던 '에너지 제로' 건물은 지금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 논리에 휩쓸려 원가(原價) 이하로 공급되는 전력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일본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전기요금이 오히려 낭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지경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한전, 발전회사, 전력거래소로 나눠놓은 전력 공급 체계도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누가 어떤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와 한전이 공개했던 예비전력 상황도 엉터리였고, 발전회사 실무자들의 엄중한 경고도 무시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력 공급망의 해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과연 이번 정전 사태의 진실과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결국 정전 사태의 책임은 온전하게 지경부에 물을 수밖에 없다.

지경부의 무능함과 안이함에서 비롯된 이번 정전 사태는 예고편일 뿐이다. 늦더위가 물러난다고 내년 여름까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올겨울 전력 사정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겨울철 전기 수요의 24%가 난방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지난 겨울과 같은 맹추위가 다시 찾아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내년 여름에 폭염이 찾아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발전소를 더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유산업의 문제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기름값을 잡겠다는 일념(一念)에 사로잡힌 지경부가 이제는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하루 260만 배럴을 정제하는 우리 정유산업 규모는 미국·중국·러시아·일본에 이어 세계 5위 수준이고, 생산한 휘발유와 경유의 55%를 중국과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다. 석유제품은 조선·반도체·자동차와 함께 수출 품목 상위권을 차지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거꾸로 일본에서 품질도 떨어지는 휘발유와 경유를 수입해서 기름값을 잡겠다는 것이 지경부의 황당한 발상이다. 일본산 석유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환경부에 휘발유의 환경기준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지경부가 국가 기간산업 육성이라는 본연의 책임을 망각하고 오히려 정유산업 죽이기에 발 벗고 나선 형국이다. 우리 소비자로부터 걷은 유류세로 품질이 떨어지는 휘발유를 생산하는 일본 정유사를 도와주려는 기막힌 정책을 고집하는 지경부가 과연 어느 나라 정부 부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경부가 쌈짓돈처럼 쓰고 있는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도 연간 유류세의 15% 수준인 3조원이 넘는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거품을 걷어낸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이 그 핵심이다. 에너지 자원 확보, 에너지 산업 육성, 에너지 소비 절약과 효율화를 위한 적극적인 녹색 에너지 정책이 절실하다. 달콤한 유류세의 유혹과 철 지난 개발경제 시대 관치주의(官治主義)의 늪에 빠져 절망적인 에너지 정책만 쏟아내는 지식경제부를 확실하게 개혁해야 한다. 물론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적극적인 국민 운동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