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을 대혼란에 빠뜨린 15일 정전사태는 매뉴얼을 무시한 한국전력거래소의 단전(斷電) 조치가 원인이었다. 과거 숱한 인명을 앗아간 크고 작은 인재(人災)의 이면(裏面)에는 이같은 매뉴얼 무시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대구 지하철 등 매뉴얼 안 지켜 화(禍) 키운 경우 많아

지난 7월 주민 16명이 목숨을 잃은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때도 위기 대응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산림청의 '산사태위험지 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연속해서 100~2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 산림청은 지자체 담당직원 연락망으로 산사태 주의 메시지를 자동 전송한다. 각 지자체는 이를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한 다음 예보 발령 등을 통해 산사태 위험을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서초구청 담당직원은 연락망을 5년간 갱신하지 않아 산림청의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192명이 사망한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위기 대응 지침을 따르지 않아 화를 키운 경우다. 화재는 50대 남자의 방화로 시작됐지만 불이 붙은 1079호 전동차 기관사는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았다. 나중에 역무원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종합사령실은 화재가 난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1080호 기관사에게 "불이 난 전동차가 있으니 조심 운전하라"고 주의만 줬다. 대구지하철공사의 '종합안전방재관리계획서'에는 역내에서의 화재시 진입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키도록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1080호 전동차는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 들어갔고, 여기서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다.

1994년 32명의 사망자를 낸 성수대교 붕괴사건도 당국이 안전 관리 매뉴얼을 무시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성수대교는 최대 통과 하중이 18t으로 설계됐다. 서울시는 18t 이상 차량의 출입을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또 1993년 4월 서울시 산하 동부사업소로부터 "점검결과 성수대교가 붕괴 위험이 있다"고 보고를 받았으나 이를 묵살했다.

국방·안보 분야도 안 지켜

매뉴얼 무시 관행은 국방·안보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작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사건 때 천안함은 접적(接敵)해역에서 북 잠수함정의 어뢰 공격 등에 대비해 12노트(시속 22km) 이상의 속도로 움직여야 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당시 6.3노트(시속 11.7km)의 저속으로 이동 중 북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5개월 뒤인 8월 9일 북한은 백령도 및 연평도 서해 NLL(북방한계선) 인근에 130여발의 포격을 했고 이중 10여발이 NLL 남쪽 해역에 떨어졌다. 교전규칙상 '비례성'과 '충분성'의 원칙에 따라 우리도 NLL 북쪽 해역에 대응사격을 해야 했지만 무시됐다. 당시의 무른 대응이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숭례문 화재

2008년 2월 일어난 숭례문 화재사건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줬다. 당시 문화재청에서 만든 '문화재별 화재 위기 대응 현장 조치 매뉴얼'에는 문화재 화재시 진압방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었다. 당시 소방관들은 불을 끄면서도 '망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우왕좌왕했다. 이 사건으로 문화재청장 직(職)에서 물러난 유홍준 교수는 "목조건축 지붕에 불이 나면 제일 먼저 기왓장을 끌어내린 후 진화작업을 해야 하지만 문화재라서 소방관이 못 부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매뉴얼대로 훈련 연습해야

올해 초 구제역사태로 소·돼지 살처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일선 지자체들이 우왕좌왕하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부실 처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매뉴얼에는 땅을 파낸 다음 비닐을 깔고 사체의 배를 가른 뒤 넣고 흙으로 덮게 돼 있으나 돼지의 경우 이 매뉴얼을 제대로 지킨 곳이 거의 없었다.

박충화 대전대 소방방재학교 교수는 "현재 한국의 재난 대응 매뉴얼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며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훈련을 안 하니 이번 정전사고처럼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허둥지둥대다 피해를 더 키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