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선 안전원(경찰)들이 담배 한 갑이라도 쪼아먹지나(뺏어가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이렇게 추석까지 챙겨주시니 형사님께 오시러울(미안하고 어찌 해야 할지 모르다) 정도라요."
9일 서울 마포경찰서 보안과 신현익(57) 경위가 송편을 들고 서울시 마포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새봄(8·가명)이 자매의 집을 찾았다. 새봄이는 신 경위가 앉자마자 "윷놀이하자"며 졸랐다. 신 경위는 "실력 한 번 볼까"라며 소매를 걷고 한참을 새봄이의 놀이 친구가 됐다.
지난해 4월 탈북해 한국에 온 새봄이네 가족에게 이번 추석은 특별하다. 가족끼리 남쪽에서 맞는 첫 번째 추석이기 때문이다.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에서는 형제들이 모여 선산에 올라가 제사를 지냈지만 이번 추석에는 가족 4명이 전부다. 신 경위는 "첫 추석인 만큼 특별히 방앗간에서 떡을 맞춰왔다"고 했다. 둘째 한봄(2·가명)이가 볼이 미어지도록 떡을 먹자 "체하겠다"며 아이를 토닥였다.
아버지 백강철(31·가명)씨는 북한 노동당이 직접 관리하는 우라늄 광산에서 일을 했다. 노동당에 소속된 덕에 한 달에 강냉이 20㎏이 배급됐다. 하지만 희망이 없었다. 어머니 최은희(여·29·가명)씨가 "한국으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백씨는 처음에는 "애들 두고 혼자 가라"고 했지만, "죽어도 가야겠다. 여기서 애들을 키울 거냐"는 부인의 설득에 결국 "죽어도 같이 죽자"며 탈북을 결심했다.
부부는 "지난해 처음 만났을 때는 사실 안전원(경찰)이라길래 형사님도 경계했었다"고 했다. 신 경위가 올해 2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찾아와 새봄이에게 영어와 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가족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신 경위는 "담당하던 다른 탈북 가정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데 자기도 공부하겠다며 달라붙는 새봄이가 어찌나 예쁘고 기특했는지 마음에 쏙 박혔다"고 했다. 지난 5월 어린이날에는 새봄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새봄이에겐 첫 놀이공원 나들이였다. 안면 비대칭으로 힘들어하는 새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한 것도 신 경위였다.
백씨 부부는 "신 경위님이 아버지 같다"고 했다. 신 경위는 "새봄이네는 내게도 가족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새봄이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될 테니 내년 설에도 오셔서 꼭 한복 입고 세배 받으셔야 돼요"라며 신 경위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