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또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유로존 부채위기가 흑사병처럼 유럽 전역에 퍼지고 있다."(중국개발은행 보고서)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손실처리하면 많은 유럽은행이 파산할 것이다."(도이체방크 요제프 아커만 CEO)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유럽계 은행을 매개로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라는 주택대출 관련 파생금융상품을 매개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면, 이번 위기는 남유럽 국가들의 부실 국채(國債)를 매개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재정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6000억유로어치 이상(유럽중앙은행 추정치) 보유한 유럽계 은행들이 자산(보유한 국채) 가치 하락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불거진 유럽 재정위기 문제는 세계적인 주가 폭락 사태를 촉발하고 있다. 5일 유럽 증시에서 뱅크오브스코틀랜드(영국), 도이체방크(독일), 소시에테제네랄(프랑스) 등 유럽 은행들의 주가가 하루 만에 8~11% 폭락한 데 이어 6일에도 독일과 프랑스 증시가 1% 이상 하락했다. 미국 증시는 장중 한때 2% 이상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폰지 게임' 함정에 빠진 유럽
최근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의 3~4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연일 급등하면서 유럽발 재정위기가 통제하기 힘든 상태로 치닫고 있다.
5일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연 5.6%를 기록했다. 연 1%대에 불과한 이탈리아의 경제성장률로는 이자 상환도 감당하기 어렵다. 마리오 블레제 IMF(국제통화기금) 수석자문관(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은 "유럽이 폰지 게임(ponzi game)의 덫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폰지 게임이란 채무자가 끝없이 빚을 내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상황을 말한다. 폰지 게임의 종착지는 파산(국가부도)이다.
문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가부채 규모가 3대 구제금융 국가(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2010년 말 현재 이탈리아(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대 채권발행국)와 스페인의 국채 발행 잔액은 각각 2조1868억유로, 7954억유로에 달한다. 현재 구제금융자금으로 조성된 유럽재정안정기금(4400억 유로)으로는 스페인 한 곳도 구제하기 벅찬 상황이다.
재정위기 국가들이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채 금리(연 5%대) 이상으로 경제성장률(연 1%대)을 높이거나 부채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성장률을 단기간에 4~5%포인트 이상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유일한 탈출구는 긴축정책을 통한 부채감축뿐이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의 정부 지출에서 사회복지 관련 지출(고정비용)이 50% 이상을 차지해 이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다. 노조의 총파업 등 사회적 저항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계 은행, 위기감 증폭
남유럽 국가의 국채 문제는 프랑스, 독일 등 우량한 나라의 금융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프랑스(4190억유로), 독일(2870억유로), 영국(2030억유로) 등이 이들 재정불량국의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클레이스, 도이체방크, 소시에테제네랄(프랑스) 등 유럽의 대표적인 은행들의 주가가 연초 대비 반 토막 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독일의 최대 시중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요제프 아커만 CEO(최고경영자)는 "현재 시장가치로 은행 금고에 들어 있는 유럽 국채를 재평가하면 많은 유럽은행들이 수년 내에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계 은행의 재무구조 악화는 글로벌 금융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계 은행들이 앞다퉈 글로벌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주가 폭락 사태를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이후 국내 증시가 대폭락한 주된 요인도 유럽계 은행들이 투자금을 회수해 나갔기 때문이었다.
EU(유럽연합)에선 재정위기국의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채권시장에 직접 개입, 1000억유로 이상의 국채를 사들였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발행 규모가 워낙 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EU 차원에서 유로존 회원국의 공동 보증으로 낮은 금리에 유로본드를 발행해서 재정위기국의 금리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 등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돈줄을 거머쥔 독일이 거부해 난항을 겪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연구전문위원은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인 독일이 상당한 비용을 떠안는 해법을 내놓지 않으면 유럽발 재정위기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폰지 게임
채무자가 돌려막기 식으로 돈을 갚아 나가면서 빚이 계속 불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1920년대 찰스 폰지라는 미국인이 피라미드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가 사람들을 파산으로 몰아간 사건에서 이 말이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