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역 서부광장사거리. 인적 끊긴 거리에 혼자 불을 밝힌 가게 하나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픈 사람들 일색이다. "공장 일을 마치고 보니 목덜미가 빨갛게 부었어요." "대상포진에 잘 듣는 약 없을까요?" "우리 막내가 토하고 열이 나는데 어떻게 하죠?"

이곳은 의정부시약사회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심야응급약국'이다. 낮에는 의정부시 약사회장인 이병성(56)씨의 개인 약국이지만 밤 10시부터는 그날의 당번 약사가 자기 약국 문을 닫고 출근해 새벽 2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약국으로 변신한다.

의정부시약사회가 지난해 7월부터 운영 중인 의정부역 서부광장사거리에 있는 심야응급약국. 지역 약사회 차원에서 새벽까지 운영하는 심야약국은 전국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오후 10~11시까지 운영하는 약국은 전국에도 여러 군데 있지만 지역 약사회 차원에서 새벽까지 운영하는 심야약국은 전국에서 이곳이 거의 유일하다. 대구시약사회가 새벽 6시까지 심야약국을 운영했다가 월 1000만원이 넘는 비용 부담을 견디지 못해 지난 7월 포기했다.

심야응급약국은 정부와 대한약사회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민의 약 구입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며 추진해온 것이다. 하지만 올해 6월 정부가 '일반약 수퍼 판매'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자 대한약사회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심야응급약국 제도는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의정부시약사회는 지난해 7월부터 심야약국을 이어가고 있다. 의정부시약사회는 인구 43만명으로 서울의 한 구(區) 규모인 의정부시의 사정에 맞게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약국 한 곳을 심야약국으로 정해놓고, 일 년에 2~3회씩 돌아가며 무료로 야근을 하기로 했다. 또 900여만원을 들여 심야응급약국을 홍보하는 전단을 만들어 뿌리고, 시내버스 광고도 했다. 하루 12만원, 연간 4000만원에 달하는 심야약국 운영비 역시 약사들이 사비(私費)를 모아 충당하고 있다.

이날 밤 심야응급약국을 찾은 손님은 60여명. 파스나 소화제, 감기약 같은 약보다는 피임약이나 안약, 알레르기약처럼 평소에 쓰던 약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발가락이 부어 올랐는데 병원에 가봐야 하느냐" "진통제랑 혈압약을 같이 먹어도 되는지 궁금하다"는 등 상담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야밤에 처방전을 들고 오는 사람도 7명이나 됐다.

이날 당번 약사인 문향숙씨는 "하루 종일 일하고뒤늦게 몸의 이상을 발견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이 낮에 자기 몸 돌볼 시간이 있겠느냐"고 했다.

이제는 지역 일대에도 소문이 나 주말이면 하루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심야에 이 약국을 찾는다. 문 약사는 "새벽에 서울 노원구나 경기 양주 같은 인근 시·도에서 약을 사러 오는 손님들도 많다"고 했다.

이달로 의정부시 심야약국은 1년3개월째를 맞는다. 처음에는 심야약국에 회의적이었던 약사들도 당번 근무를 한두 번 해보면 일종의 '사명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병성 회장은 "밤늦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왔다가 '이젠 살았다'는 표정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밤늦게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야 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약이 떨어졌는데 처방전이 없다며 '딱 1회분만 주면 안 되겠느냐'며 매달리는 만성병 환자, 병원 응급실에 갈 돈이 없다고 무작정 '약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속이 상한다는 것이다.

새벽 2시, 서울 노원에서 차를 몰고 찾아온 정모(36)씨가 유아용 해열제를 사면서 말했다. "약사님들이 늦게까지 수고해주시니 정말 고맙지요. 이렇게만 하면 뭐하러 편의점에서 약을 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