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에 새 강자가 나타났다. 방송된 지 3주밖에 안 됐는데 벌써부터 인터넷에서는 '폐인'(열성팬)들이 넘쳐난다. 최효종(25) 이원구(28) 류근지(27) 신종령(29)이 만드는 '애정남(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 코너다. 축의금 액수, 이성친구의 기준, 시식코너 시식 개수 등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치사하고 애매한' 상황을 절묘하게 포착해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5일 서울 여의도에서 애정남 멤버들을 만났다. "개그맨들끼리 '무조건 3주 안에 결정 난다'는 말을 하거든요. 처음엔 '중박(중간 대박)' 정도로 기대했어요. 그런데 첫주 반응이 너무 좋더니 반응이 계속 쭉쭉 올라가는 거죠."(최효종)

KBS 개그콘서트에서‘애정남’으로‘대박’을 터뜨린 개그맨 류근지·이원구·신종령·최효종(왼쪽부터).“ 평소 사람들이 애매하다고 느끼는 걸 정해주기 때문에 헌법이라도 만드는 기분”이라고 했다.

처음 아이디어는 얼마 전 '봉숭아학당'에서 '간꽁치' 캐릭터로 히트를 친 신종령이 냈다. 원래는 '애매하게 나쁜 상황(예를 들면 욕쟁이 주인 고깃집)을 응징해주는 것'이 줄거리였단다. "그런데 대학로 연극무대에 올렸더니 관객들이 정작 엉뚱한 데서 뒤집어지더라고요. '응징'보다 '애매한 상황'에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했어요."(신종령)

말 잘하는 '익살꾼' 최효종과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 이원구, 차분한 류근지가 합류하면서 '넘침도 모자람도 없는' 팀이 꾸려졌다. MC 류근지가 애매한 상황을 설명하면 최효종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결론을 내리고, 신종령과 이원구가 리액션을 하며 구호를 외치는 식이다.

애정남은 개그콘서트의 다른 히트작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두분토론'과 맥(脈)을 같이 한다.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 공감을 자아내는 개그다. 하지만 애정남 팀은 "그보단 '소통개그'로 불러달라"고 했다. "코미디는 마음속에 있는 걸 시원하게 긁어주는 맛이 있어야 해요. 사람들이 애정남을 보며 '나도 저거 애매했는데!'하며 무릎을 치고 '야, 지난주 애정남 보니까 이렇게 하라더라'며 후(後) 토크를 할 수 있으면 된 거죠."(류근지)

네 사람 다 과도한 표정 연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최효종이 눈을 최대한 크게 뜨며 하는 과장된 사투리 "자, 제가 정해드립니다잉~"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다. 최효종은 "못하겠다고 했는데 '해야 한다'는 팀원들의 고집에 꺾였다"고 했다. "순식간에 비호감이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전 네그맨(네티즌에게 인기 많은 개그맨)이더군요. 음하하."(최효종)

최효종은 '지역광고' '독한 것들' '남보원' '트렌드쇼'에 이어 이번 코너까지 큰 호응을 끌어내 이제 '아이디어 뱅크' 별명까지 얻었다. 비결이 뭐냐고 묻자 "눈을 감고 '내가 시청자라면 무슨 개그를 보고 싶을까' 생각한 것밖에 없다. 웃기는 능력은 없는데 그런 감(感)은 냉정한 것 같다"며 겸손해했다.

지금은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들에겐 모두 만만치 않은 '암흑시절'이 있었다. 이원구는 "잘나가는 동기들(박지선·박성광·최효종 등)을 보며 나만 늪으로 빠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류근지는 "좀처럼 인지도가 쌓이지 않아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인기는 더 고맙다. "사실 올해까지만 하고 안 되면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제가 구제받은 셈이죠."(이원구) "'간꽁치'로 이름을 알린 뒤 3~4개월 동안 쉬기만 해 불안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녹화하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신종령)

이들은 "홈페이지로 시청자들의 사연을 접수받고 있는데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이 많다"고 했다. 출력해놓은 사연만 A4 용지 300여장이란다. 제일 많이 궁금해하는 게 '빠른 생일'에 얽힌 각종 난감한 상황들. "어떻게 하면 이걸 재밌게 다룰지 연구 중"이라고 했다.

사실 애정남은 팀 내 상황부터가 좀 애매하다. 가장 선배인 최효종(공채 22기)이 나이로는 막내이고,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신종령(공채 25기)이 최연장자다. 이에 대해 최효종은 "개그맨은 짬밥 순"이라며 "그래도 신종령에게 '꽁치형(兄)'이라고 형자는 붙여 부른다"며 웃었다.

애매한 상황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들의 최종 바람은 애매하지 않았다. "애정남은 무조건 오래 갑니다~! 제2의 '달인'으로!"

[블로그] 축의금 보내기 애매하고 고민 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