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만 졸업한 우체국 집배원 장형현(64)씨는 지난 1998년 우편 배달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컴퓨터 정밀지도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장씨는 당시 유행하던 '신(新)지식인'으로 선정됐다. 그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신지식인 보고서'에서 우수 사례자 5명 가운데 1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장씨는 "이젠 신세가 달라지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

장씨는 2004년 우체국을 정년퇴직한 뒤 서울 구로구의 한 주상복합건물에서 경비원으로 지내고 있다. 장씨는 "내 프로그램을 살리지 못하고 퇴직해 너무 아쉽지만, 지금은 지나간 이야기"라고 말했다.

신지식인 가운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신지식인 1호'로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 심형래씨 정도다. 대부분은 집배원 장씨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신지식인 선정 사업은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 대책 가운데 하나로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이 1998년부터 시작한 사업을 확대, 제2의 건국위원회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포장하고 선전했다. 외환위기로 무력감과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는다는 취지였다. 첫해 611명의 신지식인이 탄생했다. 상금은 없었지만 수상자는 자부심을,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용기를 얻었다.

김대중 정부가 1998년부터 시작한 신지식인 사업이 알맹이 없는 용두사미 사업으로 전락했다. 사진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9년 10월 19일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신지식인운동 추진대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

출발은 좋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신지식인들을 쏟아냈지만, 아무런 후속 대책이 없었다. 2000년에는 무려 938명의 신지식인이 탄생했다.

그러나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주무부서가 행정자치부로 바뀌고 선발 인원은 연간 100여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2006년에는 민간단체인 '신지식인협회'로 사업이 이관되면서 정부의 예산 지원도 완전히 끊겼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 재미를 본 사업에 예산을 지원할 정부가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전형적인 용두사미(龍頭蛇尾)식 사업이 됐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신지식인들은 대통령 행사의 초청자, 외환 위기를 극복하자는 TV 광고의 출연자에 그쳤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협회는 여전히 매년 100여명씩 신지식인을 선정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선정된 신지식인은 무려 3885명에 달한다. 한 관계자는 "전산 등록에서 누락된 숫자까지 합치면 4300명이 넘을 수도 있다"고도 한다.

신지식인 사업은 선발과 발표에만 주력했을 뿐 이들의 아이디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신지식인들의 노하우들을 알리고 확산시킬 수 있는 정부 주관의 박람회나 전시관 등은 2002년 단 한 차례 밖에 없었고, 정부의 지원도 부족했다.

신지식인협회의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명단조차 부실하다. 이름과 소속, 선정 분야 등 기초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다.

정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천 명이 신지식인으로 양산됐지만 내실도, 실적도 없이 무늬만 남았다"면서 "과거 정부에서 시작된 사업이지만, 학벌과 상관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지식인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