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海賊)이 되자."

지난 24일 미국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늘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고정관념·규칙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하자는 뜻이다. 그는 실제로 해적처럼 살아왔고 직원들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했다.

잡스 창의력의 원천은 '해적 정신'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리아 유학생과 미국인 여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모가 아랍계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난한 대학원생 부부는 잡스를 기를 여력이 없었다. 잡스는 1주일 만에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양부 폴 잡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을 하던 남자였다. 그는 "아이는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친부모에게 약속하고 입양을 허락받았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는 호기심이 강해 늘 말썽을 일으켰다. 집 구석에 놓인 바퀴벌레약을 먹고 거의 죽을 뻔한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자부품을 조립해 만드는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학·마약·무단결석을 밥 먹듯이 했지만 새로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열정을 버리진 않았다.

잡스는 오리건주에 있는 리드대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한 학기 만에 때려치운다. 그렇지만 1년 넘게 학교에 남아서 청강생처럼 수업을 들었다. 잡스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연구하는 서체(書體·calligraphy) 과목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회고했다. 디자인에 눈을 뜬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잡스는 다섯 살 많은 동네 형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한다. 잡스는 천부적인 마케터였고, 워즈니악은 천재적 엔지니어였다. 잡스는 그가 48시간 만에 만든 게임 프로그램을 1000달러에 팔고는 "600달러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워즈니악에게 300달러만 나눠준다. '해적'에게 죄의식은 없었다.

가족조차 짐으로 여겼던 나쁜 남자

잡스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심지어 가족도 안중에 없었다. 사귀던 여자 친구 크리스 앤과 사이에 딸인 리사가 태어났지만 잡스는 자기 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양육비도 주지 않아 미혼모인 앤이 근근이 정부보조금을 받아 아이를 키웠다.

나중에 성장한 딸이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자 그제서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그는 1991년 로렌 파웰이란 여성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자녀는 리사를 포함해 4명. 잡스는 "암 투병을 거치면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선불교에 심취해 머리 박박 밀기도

잡스는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고수하는 채식주의자다. 생선은 먹지만 스테이크 같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몽상가'인 잡스는 비틀스의 광적인 팬이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나를 보고 몽상가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만이 몽상가는 아니랍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란 가사에 끌리는 것이다.

잡스는 1996년 애플에 복귀한 뒤 지금까지 연봉 1달러만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올 3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재산 83억달러(9조원)로 110위에 올랐다. 연봉 대신 보너스와 스톡옵션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자가용 제트기를 보너스로 받기도 했다.

건강 상태 심각

잡스는 췌장암의 일종인 신경내분비암(癌)을 수년간 앓고 있다. 올해 초 스위스 바젤대 병원에서 첨단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젤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암 치료제 신약(新藥) 임상시험에 참여했다는 말도 있다. 종양내과 전문의들은 "잡스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으로 보아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더 강도 높은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추측했다.

잡스가 세상을 뒤흔든 비결 "제품 아닌 꿈과 희망을 팔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