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아파트 공사장 인근 매점. 점심시간을 맞아 30도가 넘는 더위를 피해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근로자 두 명이 한 잔에 30루블(약 1100원)짜리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혹시 북조선에서 왔느냐"며 말을 걸자 40대와 50대로 보이는 노동자들은 "남조선에서 왔느냐"고 되물었다. 두 사람은 새까맣게 그을려 더 깡말라 보였다. 50대 노동자의 손엔 초코파이 한 상자와 1L짜리 코카콜라 한 병이 든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오늘이 작업반장 생일이라 동료들과 모인다"며 봉지를 들어 보였다.

40대 노동자는 "이곳에만 평양·남포 등 공화국(북한) 전체에서 온 노동자 50여명이 일하고 있다"며 "블라디보스토크 공사장마다 북조선 사람들이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012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로 확장과 호텔·아파트 건설 등으로 도시 전체가 공사판처럼 변했다. 덕분에 북한이 건설 노동자 송출로 특수(特需)를 맞았다. 공사장이나 시장, 값싼 식당이나 상점, 공동주택 부근에선 어디서나 쉽게 북한 노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50대 노동자는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일하면 한 달에 500달러는 번다. 가족이 보고 싶은 것 말고는 일 없다(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지난 11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2012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 전체가 공사판처럼 변한 블라디보스토크에 3000여명의 노동자를 보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3000명 정도로 추정된다. 현지의 한 관계자는 "과거 러시아로 송출된 북한 노동자는 대부분 하바로프스크 인근의 벌목장에서 일했지만 요즘은 대부분 블라디보스토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엔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3000여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추가로 유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힘들게 일하고도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회사를 통해 해외에 파견돼 매달 일정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3~5년간의 계약이 만료되면 귀국한다. 러시아 교민 P씨는 "북한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없는 겨울에도 '러시아에서 맥주 마시면서 일할래, 공화국에 가서 굶어 죽을래'라고 위협하는 당 관료들에게 돈을 뜯긴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나와 있는 노동자들은 당이나 이념보다 돈벌이가 먼저였다. 외화벌이 경험이 많은 이들 중 일부는 당 관계자들에게 일정액을 상납하고 지정받은 공사장이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주택 수리 등을 맡아서 개인 영업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날 오후 북한 노동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중국 시장에서 만난 한 현지 교민은 40대 북한 노동자 두 명에게 집 수리를 맡기기로 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돈을) 얼마나 줄 건지 생각해보고 전화하라"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고 떠났다.

최근 들어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몸조심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나와 있는 노동자 가운데 DVD로 몰래 한국 영화를 본 7명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다고 알려진 뒤부터다. 한 교민은 "북한 노동자들이 '음란영화는 봐도 되지만, 한국 영화는 큰일 난다. 공짜로 줘도 안 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한 조선족 상인은 "북한 사람들은 외화벌이 회사에 매달 많게는 1000달러나 낸다고 한다"면서 "북한에 있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고생하는 것에 비해 돈벌이가 적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 사람들한테 팬티 한 장 팔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