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현 사회부장

지난달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난 해병부대의 장교숙소에서 지난 10일 김모 소위(소대장)가 "우울증이 심각해진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매 자살했다. 김 소위가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평소 사병들을 지휘하는 데 심적인 부담이 컸다고 한다. 군 당국이 지휘부담을 느껴 사고를 치거나, 소속 부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초급장교들 때문에 속앓이를 해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관 예비역 육군대장은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일부 초급장교들은 부하들의 지도 장악에 자신감이 부족해 위축돼 있고, 심한 경우에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초급장교들의 자질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는 요즘 국방개혁 관련 설명회나 공청회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지금과 같은 초급장교 수준으로는 국방개혁의 목표인 이른바 '전투형 군대의 육성'은 요원하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12일 김관진 국방장관이 참석한 국방정책자문회의에서는 머리 좋고 자질이 뛰어난 인력을 초급장교로 많이 충원하기 위해 ROTC(학군사관후보생)의 복무기간 단축을 검토해보자는 방안이 논의됐다. ROTC는 육군 소위로 연간 4500명가량이 임관해 육군 초급장교인 소위와 중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ROTC 장교의 복무기간을 현재 27~28개월(훈련기간 3개월 포함)에서 24개월로 단축해 사병들의 복무기간과 비슷하게 맞춰 우수 인력들이 ROTC에 대거 지원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ROTC 복무기간을 24개월로 단축할 경우 제대장교와 신입장교의 교체기간(훈련기간) 3개월이 공백으로 남는데, 이 기간 동안 2년차 소대장과 부사관에게 보다 많은 역할을 부여하면 군 인력운용이나 작전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과거 같으면 "사병에 이어 군장교 복무기간까지 단축하느냐"는 반박이 당연히 나올 법했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ROTC 복무단축도 검토할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사병 복무기간이 2008년부터 2년 이내로 줄어들면서 ROTC를 비롯한 초급장교 지원자들이 줄고 있다. 수도권 주요대학의 경우 ROTC 지원자 감소추세는 더욱 뚜렷하다. 서울대의 경우 2008년 ROTC 정원(3·4학년)이 처음으로 100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올해는 16명이 지원해 현재 정원이 44명이다. 연세대고려대도 지원자가 30~40명으로 격감했다. 반면 지방의 일부 대학에서는 취업에 장교 출신이 유리하다는 점 등을 적극 홍보한 탓에 정원이 오히려 늘고 있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ROTC 지원자가 일부 대학에서 늘어난다고 해서 초급장교의 정예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김관진 장관이 내년부터 수준 미달의 초급장교 후보는 임관시키지 않는 '임관 종합평가제도'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전반적으로 자질이 떨어져 있는데 몇명 걸러낸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반응들이다.

초급장교 자질저하는 유사시가 아니면 부작용이 당장은 크게 드러나 보이진 않는다. 현재 논의 중인 국방개혁 논의과정에서도 온통 군 지휘부 구조개선 방안만 요란하게 나왔지, 정작 군 전투력의 근간인 초급장교에 어떻게 하면 우수한 자원을 많이 충원할지 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초급 지휘관의 강약(强弱)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갈린다는 것은 전사(戰史)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군 당국이 ROTC 복무단축 방안이 초급장교 자질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한다면, 당장 공론에 부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