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화성에서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는 박순구(49)씨는 초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인 1971년 의정부의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버스 승차권을 주웠다. 그 승차권으로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다 본 풍경은 신기했다. 즐거웠다. 버스표는 그에게 바깥 세상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줬다. "가난한 현실이 너무 싫었던 어린 제게 그때 그 버스표는 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버스표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힘들면 언제든 도망갈 거야'라는 꿈을 꿨습니다."

박씨는 이때부터 버스, 기차, 비행기 등 교통수단 승차권을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40년간 모은 승차권이 165㎡(약 50평) 규모의 사무실과 창고를 빼곡히 채울 정도다. 일제시대 전철권부터 KTX 승차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박씨는 "모은 승차권을 일일이 셀 수 없지만 1억장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처음 주운 승차권으로 의정부 시내를 돌아다니며 '해방감'을 맛본 박씨는 서울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74년 8월15일에 서울지하철 개통식에 참석해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던 일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지하철 1호선 개통기념 20원짜리 서울역∼청량리 간 전철 승차권은 그가 특히 아끼는 자료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버스표를 주워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박씨는 나이가 들면서 중국음식 배달, 신문 배달 등으로 돈을 모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는 "돈이 있어야 승차권을 한 장이라도 더 살 수 있기 때문에 일을 했다"며 "승차권을 모으기 위해 집을 나와 음식점에서 일하니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가 될 때쯤에는 승차권뿐만 아니라 교통범칙금 스티커, 주차권 등 교통과 관련된 자료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박씨는 "안내양, 운전기사들과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승차권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관광은 관심 밖이었다. 곧장 돌아오거나 또 다른 곳으로 가는 승차권이 그의 손에 들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승차권 수집에 푹 빠졌다.

박순구씨가 곳곳에 승차권이 쌓여 있는 평택의 철도문화협력회 사무실에서 40년간 수집한 승차권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한때는 신문 지국을 운영하며 오산과 평택에 집을 3채나 장만하는 등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러나 승차권에 대한 그의 별난 집착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심해졌다. 당연한 결과로 가정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박씨는 승차권 수집과 가정의 행복을 맞바꿔 버렸다고 했다.

박씨는 "내가 모은 승차권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고맙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며 "힘들게 모은 재산도 1991년 교통문화의식개혁운동본부를 만들고 승차권 전시회 등 문화행사를 열면서 다 써버렸다"고 했다. 박씨는 2003년부터는 교통문화의식개혁운동본부의 명칭을 철도문화협력회로 바꿨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있는 철도문화협력회 모임에는 철도를 좋아하는 회원 2300여명이 가입해있고, 박씨는 모임 운영자를 맡고 있다. 박씨는 "철도는 국가가 운영하면서 자료가 가장 방대하고, 사람의 추억과 향기가 가장 많이 담겨 있다"며 "주변에서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 거 아니냐며 의심하는데 순수하게 철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다. 박씨는 현재 평택에 있는 송탄시외버스터미널 주차장 한 쪽에 허름한 가건물 사무실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회원들과 함께 각종 철도나 지하철 시승회에 참여하거나 정부나 지자체가 주최하는 철도 관련 사업 공청회에 시민 대표로 참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씨의 사무실과 창고가 있는 땅이 최근 경매로 한 대기업에 낙찰되면서 조만간 비워줘야 할 상황이다. 그는 "내가 수집한 승차권 전부가 내 마음이고 살붙이"라며 "아직 승차권을 새로 보관할 곳을 구하지 못했지만 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